아래 글에서 하회마을의 상업활동 때문에 하회마을을 지나치게 폄하한 느낌이 든다. 실은 하회마을에는 부용대에서 봐야 할 전체적인 지세 외에도 보아야 할 것들이 많다.
주말에 하회마을을 갈 경우는 시간을 잘 조절하여 탈춤공연 시간에 맞추어 가는 것이 좋다. 매주 탈춤을 공연하는 곳(3,4,11월은 일요일 오후3시, 5월∼10월은 토·일요일 오후 3시)은 국내에서 유일한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탈춤 공연이 끝나면 공연장 솔밭을 내려와 백사장에서 부용대를 향해 고함을 질러보는 것이 좋다. 국내에서 깊은 산에 오르지 않고 메아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다. 회사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면 "O과장 나쁜X"이라고 고함을 질러보면 적어도 부용대만은 그 말에 동조할 것이다. 부용대는 국제 탈춤페스티벌과 같이 열리는 안동민속축제 때 선유줄불놀이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여러분, 부용대에다 스트레스를 날려 버려요. 탈춤을 추면서
부용대 앞 모래밭에서 노는 아이들(아들, 딸, 조카)
마을 안에서 꼭 보아야 할 것으로는 유성룡의 고택인 충효당에 들어가 여러 가지 역사적 유물들을 보아야 한다. 나는 충효당에서 징비록(懲毖錄)의 설명을 보기 전엔 임진왜란 때 비적(匪賊)을 징치(懲治)한 기록이라는 뜻의 책이름(懲匪錄)으로 오해하고 있었는데 징비록(懲毖錄)의 설명문을 보고 나서야 뉘우치고 삼가다는 뜻임을 알았다.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선생이 거처했던 풍산류씨(풍山柳氏)의 대종택(大宗宅)이며, 동시에 풍산류씨 겸암파의 종택이기도 한 양진당도 꼭 보아야 한다. 류운룡은 류성룡의 형으로 북쪽에는 형님댁인 양진당, 남쪽에는 동생댁인 충효당이 마주보고 있다. 류성룡은 주로 관계에 진출한 반면 형인 류운룡은 벼슬은 조금만 하고 고향에서 공부에 전념하여 영남학파의 주요 학자 중 한 명이 되었다. 현대에도 맏이는 고향에서 부모님 모시고 농사를 짓고 동생은 출향하여 출세길을 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우리가 잘 아는 노무현 대통령만 해도 형은 고향을 지키고 있다. 각 형제와 관계되는 서원도 따로 있는데 서애 유성룡과 관계되는 서원은 병산서원, 형인 겸암 류운룡을 모시는 서원은 부용대 아래의 화천서원이다. 화천서원은 외부인의 출입을 별로 환영하지 않는데 그도 그럴 것이 화천서원에 와서까지 관광객들이 류운룡이 아닌 류성룡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자손들이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 속으로 "서애 작은 할아버지보다 우리 조상님인 겸암 할아버지께서 학문으론 한 수 위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회마을의 양진당이나 화천서원에 들어가서는 류성룡의 이야기보다 류운룡의 학문에 관한 이야기로 예의를 갖출 일이다.
하회마을은 원래는 허씨의 마을이었다고 한다. 안씨도 살았다고 한다. 하회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었다는 구전(口傳)도 있고 강건너 광덕동의 건짓골에 허정승(許政丞)의 묘가 있어 지금도 해마다 류씨들이 벌초를 하고 있으며, 1642년의 기록에는 류씨 이외에도 극히 적은 가구의 김해 허씨와 광주 안씨(安氏)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고 한다.
삼신당도 꼭 들러야 할 곳.
봄에 방문하는 경우 많은 집에서 입춘첩(立春帖)을 붙여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인 충효당에는 각 문마다 다른 내용의 입춘첩을 써 붙인다고 하니 관심있는 사람은 충효당 내 각종 문의 입춘첩을 읽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모두 복이 되는 글귀들이니 많이 볼수록 희망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지 않겠는가? 이것만으로도 하회마을을 방문하는 본전은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고가의 입춘첩(立春帖) :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 建陽多慶)
그리고 뜻모르고 좋아하는 대길(大吉)하고 다경(多慶)할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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