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의 꿈, 그리고 꽝
1. 안동독립기념관
이번 주말은 항일(抗日)의 역사를 따라가는 주말이었다. 경술국치(8월 29일)를 기억해서 의도적으로 그리한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금요일엔 안동 독립운동기념관 방문, 토요일엔 6.10 만세운동의 주역 권오설 선생의 행적을 찾아 가일마을 답사.
안동의 독립운동기념관이 개관했는데 마음만 있었지 가보지는 못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독립기념관이 있는데 굳이 안동에 독립운동기념관을 따로 세운 것이 의아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동은 독립운동에 관한 한 할 말이 많은 도시다.
어느 분의 글을 잠시 빌려 오면 안동은 항일 의병의 효시랄 수 있는 ‘갑오의병(1894)의 발상지요, 1905년 이후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10명을 낳은 고장이다.(전국 66 명) 안동은 갑오 이후 1945년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에 이르기까지 51년 동안 쉼 없는 독립 투쟁을 전개하여 단일 시군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유공 포상자(310여 명, 포상 받지 못한 이를 포함하면 1천여 명)를 배출했다.’
안동의 독립운동사를 발굴하고 정리하는데 크게 공헌했고 안동 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을 주도하고 현재 관장으로 있는 분이 안동대학교의 김희곤 교수님이다. 금요일 대선배 한 분이 이 관장님의 초대를 받았으니 같이 가자고 해서 퇴근 후 몇몇이서 방문하게 되었다. 기념관을 구상하고 설립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신 관장님이 직접 하는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니 안동 지역의 독립운동 흐름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서 기념관을 소개하는 글은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홈페이지를 접속해 보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테니까. http://www.815andong.or.kr/
전시관의 첫 부분이 구한말의 의병운동인데 그 효시가 1894년의 갑오의병이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군은 국내에 주둔하며 조선에 강제적으로 내정개혁을 요구하였다. 조선이 이를 거부하자 일본은 1894년 6월 21일 경복궁을 공격, 점령하는 갑오변란을 일으켰다. 갑오변란 이후 일제의 지원을 받는 개화파들에 의해서 친일내각이 성립되었고 일련의 개화 정책들이 추진되었다. 이 때 최초의 의병이 안동에서 일어났는데 이를 주도한 인물이 서상철이다. 그는 청풍 사람이지만 안동향교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서상철이란 이름이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선배님 중에도 서상철이란 이름이 있지만 다른 곳에서 본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2. 난 한 건 올린 것일까?
토요일 가일마을 답사 뒤풀이를 거하게 한 덕분에 늦잠을 자고 11시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인터넷에서 싸고 좋은 책이 있는지 검색하고 있는데(요즘 정말이지 입에 맞는 떡이 없다) 눈이 번쩍 뜨이는 물건이 보인다. ‘서상철의 부친이 일본 오사카에 있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 서체나 종이로 봐서 일제 강점기 때의 편지다. 그렇다. 독립운동기념관에서 어쩐지 낯익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그 이름이다.
인터넷에 이런 편지는 수도 없이 많이 있기 때문에 경매에 나와도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 편지도 전번에 한 번 올라온 일이 있고 그 때 내가 이 이름을 본 것이다. 이런 종류의 편지는 대부분 최저가 1만원에 경매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런 류의 물건은 대개 경쟁자도 없어 1만원이면 내 물건이 된다.
고민이 시작된다. 우리 나라 서씨는 상자 항렬자가 많아서 서상철이란 이름은 흔한 편이다. 그런데 구한말 의병운동을 주도했던 서상철 선생이 당시 젊었다면 일제 강점기에 살아있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일본에 체포되어 갔든지 공부하러 갔든지 일본에 있었을 수도 있다. 비슷한 이름이 많아도 당시 일본으로 갈 정도의 재력이 있고, 부자간 모두 한자로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사자. 1만원인데 뭐. 사서 기념관 관장님께 감식을 의뢰하자. 아니면 보통의 편지 한 장을 비싸게 산 것이고 만약 맞다면 대박을 터뜨리는 거다. 확률상 그리 나쁜 투자는 아니다.
밤에 확인하니 예상대로 단독 입찰로 내 물건이 되어있었다. 3일 아침 대금을 입금하면 늦어도 수요일까지는 배송될 것이다. 로또 복권을 산 후와 비슷하게 즐거운 상상을 하며 며칠을 보낼 수 있겠다.
3. 꽝
문서를 받고 기념관 관장님께 메일을 보냈다. 8시간도 되기 전인 아침에 관장님 전화가 왔다. 답은 꽝. 이름 끝의 철자 한자부터가 다르고, 편지글의 문투가 한 세대 지난 문투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