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슈 여행기 - 출발, 후쿠오카
아홉시 30분까지 부산항 터미널에 도착하기 위해 안동에서 여섯시에 출발했다. 안동이라는 시골에서는 이 시간까지 부산에 도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으므로 당연히 승용차를 이용했다. 장거리 여행시 아내는 승용차를 선호하는 편이고 나는 대중교통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번엔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아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부산을 가게 되었다. 네비게이션 덕분에 무리 없이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은 했는데 짐 검사에서 내 가방이 걸려 가방을 열어야 했는데 이유는 카메라, 노트북, 전화기들의 충전기를 둘둘 말아 작은 가방에 넣어 큰 가방에 넣었는데 그게 무슨 폭발물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하필 그 작은 가방이 팬티들 위에 있었고 짐 검사하는 직원이 젊은 여성이어서 본의 아니게 보여줄 것도 없는 속을 다 보여주고 말았다.
비틀호
원래 타기로 한 배는 코비였는데 하루 연기되는 바람에 우리가 탄는 배는 비틀호로 바뀌었다. 비틀호는 선원 전원이 일본인인 것으로 봐서 아마도 일본 선사에서 운영하는 배인 모양이다. 그럼 나중에 취항한 코비호는 한국의 비틀이란 뜻인가? 한국의 비틀이란 뜻이라면 이 회사의 자본도 일본에서 왔나? 등등 쓸데없는 지레짐작을 하며 세 시간을 졸며 후쿠오카 항에 도착하였다. 중간에 대마도를 봤는데 정말 대마도가 한국에서 가깝긴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쿠오카항
하카타 국제 여객 터미널
오후 두 시 넘어 하카타 항에 도착하고 1일 버스 티켓을 사서 버스를 타고 호텔을 찾아가 체크인을 했다. 3일간 묵을 호텔에 도착하니 세 시가 넘었다. 오늘은 어쩔 수없이 후쿠오카 시내 관광이나 해야 할 모양이다. 1일 버스 티켓은 사용에 주의를 해야 했다. 내릴 때 티켓을 보여주고 내리니 기사 아저씨가 별 말은 않는데 표정이 조금 덜 좋아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버스에 오를 때 정리권을 뽑아 투입구에 넣고 1일 티켓을 보여줘야 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수모는 호텔에서, 기차역에서 한 번씩 더 당하고 마지막에 통쾌하게 만회를 하게 된다.
2인용 버스 1일권, 사용하기 전에 해당 날짜를 긁으면 된다.
호텔에서는 일단 일본어로 접근했다. 몇 차례 대화가 오가고 서류를 작성할 때까지는 초보 일본어가 제대로 작동해서 흐뭇한 기분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프런트 아가씨는 처음엔 한국인에게 늘 그렇게 한다는 듯이 영어로 묻다가 내가 계속 일본어로 답하니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사용한다. 호텔 사용 안내를 일본어로 하는데 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결국 밑천을 드러내고 “니혼고가 헤타데스카라, 에고가 이이데스네.” 라고 항복 선언을 하고말았다. 스타일 다 구겼다. 전번 히로시마 갈 때도 느낀 일이지만 이런 일 겪고 나면 그 다음부턴 일본어가 잘 나오지 않는다. 에잉, 이번에도 베맀다.
대충 짐을 풀고 하카타 역에 북큐슈3일 정기권과 예약을 하러 갔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신칸센쪽 출구인데 들어가니 JR매표소라고 되어 있어서 차례를 기다려 예약을 하려고 하니 그 매표소는 아니고 큐슈철도 매표소에 가야 한단다. 음, 그곳은 신칸센 위주로 영업하는 곳이었다. 같은 JR인데 그냥 같이 하지. 다시 조금 떨어진 큐슈 철도 매표소에서는 제대로 했다. 몇 마디 이상 진행되면 일본어가 막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출발 전에 미리 준비를 했다.
次をお願いします。
1.JR北九州三日券(13,14,15日)
2. 乘車券 または 予約(皆二人)
1) 13日 博多駅出発 能本行 初気車
13日 能本駅->アソ行 換乘 (九州橫斷特急?)
13日 能本駅出発 博多行 最後の気車
2) 14日 博多駅出発 由布院行 初気車(ノモリ)
14日 由布院駅出発 博多行 最後の気車
3) 15日 博多駅出発 有田(ありた)行 初気車
15日 有田(ありた)駅 博多行 12時 前後 気車
1)과 2)는 실제 표를 끊을 때 날짜를 바꾸었다. 아소산은 날씨가 좋지 않으면 케이블카 운행을 않을 수도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아소산 가는 날 날씨가 좋은 날을 잡기 위해 호텔에 체크인 할 때 물었다.
“아시타노 텐키가 도~다토 이이마스카?”
“~ 나이데스가 아메 ~.”
확실하진 않은데 13일은 비가 올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아사테와?”
“~ 나이데스가 이이~.”
“아시타 메이비(may be) 아메, 아사테 메이비(may be) 이이?”
“하이.”
확실하진 않은데 14일은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였다. 일본어 단어를 모를 때는 영어를 섞어서 쓰면 된다. 일단 호텔 직원의 말을 믿고 아소산을 14일 가고 유후인을 13일 가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이걸 들이미니 창구 담당 직원(橋田美子라는 명찰을 단 젊은 여성)이 친절하게 대해준다. 이 아가씨 다행히 영어가 안 되는 직원같았다. (요즘 일본 관광지 철도 역에서는 이런 경우 드물다.) 좋으나 싫으나 일본어로 대화해야 하는데 이번엔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사전에 준비해둔 위의 메모지가 있었으니까. 일단 서류를 작성하고 7,000엔짜리 3일 Pass를 끊은 후 내가 요청한 모든 승차권을 끊어주느라 이 직원 고생깨나 했다. 그래도 한번 찡그리는 법 없이 우리 부부 같은 자리를 배정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일일이 설명해주고, 끊고 나서는 확인시켜주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래 이게 친절이야. 솔 음정으로 이야기 안 해도 되고 영어 못 해도 되니 이런 직원이 있으면 관광객이 기뻐하지. 10장이 넘는 표를 들고 돌아서니 든든하다. 모르긴해도 정규 가격으로 치면 우리 돈으로 100만원어치는 넘을 거다. 그래도 시간을 예측할 수 없는 일부 구간은 자유석 타기로 마음먹고 끊지 않은 것이 이렇다. 본전 뽑았다는 생각과 橋田美子씨의 친절 덕분에 앞으로 3일간의 기차 여행은 편안할 것이다.
일본은 정기권을 가지고 있으면 미리 예약을 해서 좌석도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개는 이런 작업이 무의미하다. 대부분의 경우 지정석은 물론 자유석도 좌석의 여유가 있어 굳이 지정석을 예약할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일본사람들은 지정석을 정해주면 반드시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좌석이 문 바로 앞인 경우 자유석보다 불편하다. 또 신용이 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지정된 시간에 그 차를 타야 하므로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하지 못하는 불편함도 있다. 반면 좌석을 예약해두면 좋은 점도 많다. 공휴일에 유명 관광지를 오가는 기차는 자유석 좌석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지정석을 확보해두면 편안하게 오갈 수 있다. 마지막 날 아리타에서 후쿠오카로 돌아올 때 탄 열차는 만원이어서 자유석 좌석이 없었는데 미리 좌석을 확보한 덕분에 편안히 올 수 있었다. 또 후쿠오카에서 유후인에 가는 노모리 열차처럼 지정석만으로 운영하는 열차도 있다. 이런 열차는 반드시 지정석을 예약해두어야 한다. 구마모토에서 아소산 갈 때 탄 열차는 관광열차였는데 미리 예약을 하면 일행이 함께 둘러앉아 갈 수 있는 좌석을 배정해주기도 한다.
역에서 나와 후쿠오카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1일 버스 Pass를 끊었으니 본전 뽑을 때까지 후쿠오카 시내를 돌아다녀야 할 것 아닌가? city canal인지 뭔가 하는 쇼핑센터에 가려고 내렸는데 나카스라는 번화가였다. 아무려면 뭐 어떤가? 쇼핑할 일도 없으니 그냥 돌아다니다 한 끼 때우면 되는 것이지. 무엇을 먹을 것인지 원초적인 고민을 하다가 결국 라면집에 들어갔다. 후쿠오카 라면은 돼지고기 육수에 삶는 것으로 유명한데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국물을 먹기 힘들다.
후쿠오카 라멘, 600엔이었는지 700엔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면 국물은 생각보다 짰다. 일본 사람들은 싱겁게 먹는다는 것도 편견인 모양이다. 짜게 먹는 것 외에도 일본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이날 시내를 돌아다니다 느낀 점만 해도 아주 많다. 후쿠오카 시내를 흐르는 강물의 색깔은 짙은 녹색으로 한국의 주요도시를 흐르는 강보다 별로 맑아보이지도 않았고, 강에는 거품이 떠있는 것도 보였다. 많진 않지만 강에는 쓰레기가 있기도 했다. 후쿠오카는 조례로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흡연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식당이나 흡연구역에서만 흡연이 가능한 것 같았다. 그런데 강변의 흡연구역의 재떨이 주변도 깨끗하지는 않았다. 흡연구역 외에서 흡연하는 사람도 자주 보였다. 교통에서의 준법정신도 기대이하였다. 역 근처의 작은 길에 있는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너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 부부가 빨간불에 신호를 기다리리 그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렸는데 아마도 외국인 보는 앞이라 그런 것 아닌가 싶었다. 신호를 받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그 사이에 질러가는 차량도 보였다. 일본도 다 사람 나름인 모양이다.
흡연구역, 주변이 지저분하다. 후쿠오카는 조례에 의해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탄 상태에서는 금연
큐슈에서 버스를 탈 때는 주의를 해야 한다. 일단 타면서 입구 우측에 있는 정리권을 뽑고 정리권에 적힌 번호를 봐야 한다. 그리고 내릴 정류장 전에 하차 호출 벨을 누르고 버스 앞에 있는 구간별 요금을 본다. 버스 앞에 있는 전광판에서 자신의 정리권에 적인 번호의 정류장에서 탄 사람이 내야 할 요금이 적혀있다. 혹시 잔돈이 없으면 미리 나가서 동전 교환기에서 잔돈으로 교환해서 해당 금액만큼 넣으면 된다. 1일권을 가진 사람도 정리권을 뽑는 것은 같고 다른 점은 동전 투입구에 정리권을 넣은 후 1일권을 보여주고 내리면 된다. 이 사실을 터득하는데 이틀이 걸렸다.
건물 구경만 한 커낼시티
나카스 지역 강변의 포장마차가 유명하다길래 뭔가 먹을까 해서 가보았는데 별로 앉을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버스 1일권의 본전을 뽑기 위해 텐진 지역까지 가서 거리를 배회하다가 역내 상가에서 딸아이 줄 샤프 연필을 사고 호텔 옆 편의점에서 맥주 두 병을 사서 객실에 돌아와 마시고는 인터넷과 씨름을 했다. 중간에 혼자서 한잔 할까 싶어 나갔다가 그냥 돌아왔다. 어차피 이번 여행은 아내에게 봉사하기로 했으니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한잔 하는 내 취미생활은 포기를 하자. 사실 출국전에 지인에게 한 가지 정보를 얻었다. 스나쿠바(snack bar)를 가면 마담과 이야기하며 술을 마실 수 있는데 그게 아주 아주 재미난다고 알려준 것이다. 주변을 돌아봐도 스나쿠바는 보이지 않았다. 객실이 금연실이라 호텔 문밖에서 한 대 피고 들어오다가 문이 잠겨 인터폰을 누르는 일도 있었다. 12시 넘으면 자동문이 자동으로 잠기고 호텔 직원이 열어줘야 들어오는 시스템이었다. 한국 손님들 많던데 이 호텔 직원 제법 귀찮게 생겼다.
포장마차 거리, 나를 유혹하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