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이스탄불

안동에 사노라면 2018. 2. 7. 09:23

이스탄불에 꼭 가고 싶었다. 1600년간 수도, 그것도 제국의 수도로 기능했던 도시.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으며, 두 대륙을 나누고 두 바다를 잇는 해협을 가진 전략적 요충지. 1박 2일의 짧은 기간동안 이스탄불에 머물렀다.

 

무엇보다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보스포루스(터키어 Boğaziçi, 그리스어 Βόσπορος) 해협이 보고 싶었다. 폭이 가장 좁은 곳은 750m인 좁은 해협이 두 대륙을 나누는 곳이다. 페르시아,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로마, 비잔틴, 십자군, 오스만 투르크, 러시아 등 수많은 세력들이 이 해협을 오가며 역사를 만든 곳이니 그 현장에 발을 디뎌보고 싶었다. 이 해협은 홍수설화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600년경의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관련 기록은 그리스 사람들의 정착에서 시작된다. 기원전 667년 그리스의 아테네 인근 현재의 아티카 주에 있는 메가라(Μέγαρα, Mégara) 사람들이 현재 토카프 궁전이 있는 사라이부르누(Sarayburnu) 구역에 정착했다. 그들의 왕의 이름이 비자스(Βύζας, Byzas)였는데 의 그 이름을 따서 비잔티온(Βυζάντιον)이라고 불렸고, 로마 시대에는 비잔티움으로 불렸다.

 

 

토카프 궁전의 뜰.

보스포루스 해협 건너편에 보이는 땅이 아시아. 그 오른쪽이 마르마라해.

메가라 사람들이 이 근처에 정착했을 것이다.

 

이스탄불은 거의 1600년 동안 여러 국가의 수도였다. 로마 제국 말기인 330년 5월 11일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분열된 제국을 재통일하고 이 도시를 ‘새로운 로마(Nova Roma)’로 명명하고 로마의 수도로 선포했다. ‘새로운 로마의 별칭’이 콘스탄티노폴리스(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라틴어 Constantinopolis, 영어 Constantinople)였다. 1204년까지 로마의 수도였다. 서로마는 멸망했지만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는 1204년까지 이어진 것이다. 1204년 4차 십자군 전쟁 때 라틴인들이 정복하여 잠시 라틴 제국을 세웠지만 동로마 제국의 계승국 중 하나인 니카이아가 1261년 수복하여 비잔틴제국을 건설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기 전까지 비잔틴제국의 수도였다. 950년경 인구 40만 정도의 번성한 도시였지만 1453년 오스만에 함락되기 직전에는 인구 4만 명까지 줄어들었고, 영토는 도시 주변에 국한될 정도로 약해진 상태였다.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이후에는 오스만 제국(1453 ~ 1922년)이  수도로 정했다. 오스만 제국 치하에서는 그리스어 이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와 터키어 이름인 이스탄불이 모두 사용되었으나 서구에서는 콘스탄티노폴리스란 이름이 여전히 사용되었다. 이스탄불은 1924년에 공식 명칭이 되었다. 이후 터키 공화국의 수도가 앙카라로 정해져 행정수도로서의 기능은 끝이 났다.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은 중세 그리스어로 도시를 의미하는 ‘이스 띤 뽈린"(εἰς τὴν Πόλιν)에서 왔다. 터키에서 이스탄불이라는 명칭이 굳어진 것은 1930년대 이후이며 그 이전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터키식으로 바꾼 콘스탄티니예(konstantiniye)라는 이름이 함께 사용되기도 했다.

 

* 2017년 가을 이스탄불에 갔을 때 보스포루스 해협 건너편 아시아 땅에 모스크가 보이는데 미너렛이 여섯 개였다. 미너렛 여섯 개면 술탄 아흐메트가 만든 블루모스크만 있다고 생각하던 나는 순간 혼동이 왔다. 블루모스크가 왜 반대편에 있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에르도안 대통령이 세우는 모스크란다. 그런데 미너렛이 여섯 개? 이 양반 자신이 술탄이라고 착각하고 있거나 술탄이 되려고 하는 모양이다. 2018년 8월 터미는 리라화 폭락 사태를 맞았다. 에르도안이 서방을 싫어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싫어하는 것과 무시하는 것은 다르다. 대통령이 고집을 피우면 민초들이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