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지례예술촌

안동에 사노라면 2004. 5. 2. 04:15

노동절 오후 아이들이 안동대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 말로만 듣던 지례예술촌을 찾아보았다. 정식 방문이 아닌 도둑방문이었다. 도둑방문이라고 하는 것은 이 곳은 관광객이 구경하고 가는 곳이라기보다 촌장님과 사전에 약속을 하고 숙박을 하거나 제사 등의 행사를 참관하는 손님으로 가는 곳인데 약속도 없이 살짝 가서 보고 왔으니 도둑방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촌장님이 봤다면 예의를 모르는 놈이라고 욕했을 것 같다.

 

  안동에 살아도 지례예술촌이란 곳에 가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우선 찾아가는 길이 만만하지 않다. 안동-영덕간 국도에서 10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산길을 따라 가야 하고 현재까지도 상당 구간은 비포장도로이다. 비포장이란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산길이란 뜻이다. 노선버스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마음먹고 가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지례가 다가오면 다시 포장도로가 나오는데 산 정상쯤에서 호수를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이다.

 

 

  지례예술촌은 고가들은 1664년 조선 숙종때 지어진 의성김씨 지촌 김방걸 종택과 제청, 서당으로 모두 10여 동의 건물들로 원래 임하댐 수몰 지역에 있던 것을 지촌 선생의 13대 종손인 김원길 촌장이 1986년부터 89년까지 200여m 떨어진 현재의 장소로 옮긴 것이다. 이 예술촌에는 많은 예술인이 작품활동을 위하여 방문하여 체류하다 가기도 하고, 외국인을 포함한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한국적 정취를 체험하기 위하여 방문하기도 한다.

 

  예출촌이라고 하니 여러 가구가 사는 마을로 착각하기 쉬운데 실은 종가집과 서당으로 이루어진 단일 가구라고 할 수 있다. 집 앞으로는 호수가 펼쳐져 있는데 사실은 임하댐의 일부이지만 산으로 둘러싸여 전혀 인공의 냄새를 느낄 수 없다. 특별한 행사가 없는 날에는 절간보다 조용한 곳이다. 도둑방문을 하는 약 20분 동안 사람이라고는 딱 한 사람 보았다.

 

  하회마을을 찾은 사람은 상가로 변해버린 마을에 실망하게 되지만 지례예술촌은 그냥 왔다가 감동하고 가는 곳이다. 작품을 구상하거나 집필하려는 문인, 도시의 번잡함을 벗어나 휴식하고 싶은 사람, 때묻지 않은 자연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와서 머물다 갈 만한 곳이다. 단, 나처럼 도둑방문을 할 것이 아니라 약속을 하고 방문할 것을 권한다. 지례예술촌은 둘러보는 곳이 아니라 머무르는 곳이다. 지례예술촌 가는 길의 비포장 길 일부에서 현재 포장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장차 번잡해질 가능성이 많으니 며칠이라도 머물고 싶은 사람들은 서두를 일이다.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는 www.chirye.com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