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고구마 추수 감사 음악제

안동에 사노라면 2006. 11. 4. 10:25

  금요일, 일을 마무리하려면 아무래도 퇴근이 많이 늦을 것 같은데 금요일 저녁을 일이나 하며 보낸다는 게 좀 억울하기도 하다. 토요일 노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금요일까지 늦도록 현미경에 눈을 박고 있고 싶지는 않다. 누가 날 좀 불러다오. 이런 바람이 전해졌는지 다섯 시쯤 되니 동료 한 사람이 저녁이나 하자고 전화가 왔다. 더군다나 행복한집에서 홍어를 먹자고.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홍어와 소주로 분위기를 띄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국학진흥원 박선생님이다.

 

  “선생님 뭐하세요?"

  "아, 예 행복한집에서 소주 마시고 있습니다."

  "사모님께 점수 따실 만한 제안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 ‘마누라 좋아할 만한 일? 혹 오페라나 연극 보러 가자는 이야기 아냐? 그런 건 우리집 분위기에는 안 맞는데...’ 아, 예.”
  “안동댐 위에 있는 ‘밤배’ 아시죠? 오늘 그 집 마당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고구마도 굽고 안동에서 활동하는 가수들도 초청해서 노래도 듣고 하는 모임을 가집니다. 사모님과 놀러 오시지요.”
  “지금 밖에서 다른 분들과 있어서 집사람과 같이 가기는 뭣하고요 ...”
  “아, 예 제가 진작 전화를 드렸어야 하는데. 그럼 그 분들과 같이 오십시오.”

 

    국학진흥원 식구들 가을을 보내는 행사 겸 수확한 고구마 맛도 보는 행사다. 박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은 해마다 직장 근처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는다. 올해는 작년보다 수확이 못하다고 하더니 그래도 그 고구마를 지인들에게 맛이라도 보일 생각인 게다. 내가 붙인 이 행사의 이름은 ‘고구마 추수 감사 음악제’. 행사장에 도착하니 옥외 무대 앞으로 좌석을 배치하고 모닥불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기다리니 박선생님과 일행들이 들어왔다. 처음으로 박선생님 사모님도 만나고.  ᄌ대 ᄆᄎ과를 나온 분이다. 학창 시절부터 그 과라면 ᄒ대 ᄆ대와 더불어 신화와 전설의 학과로 생각하던 곳이다. 그 학과 출신들은 모두 신경에 날이 서 있고 말붙이기도 힘들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살았다. 인사를 하며 그런 생각을 비쳤더니 웃으며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음 정말 그렇다. 상상속의 그 학과 출신은 나같은 사람과 여유있게 인사나 주고받으면 안되는 사람이었지.    


  음악회 초기에 동료 한 사람이 당직 콜을 받고 먼저 가고 세 번째 가수가 올라올 때쯤 같이 간 다른 동료도 춥다고 집에 가려고 하니 박선생님이 조금만 더 있다가 가도록 말리라고 한다. 다음에 올라올 이미숙이란 가수의 노래가 너무 좋으니 한 곡이라도 듣고 가라고. 결국 그 동료는 불러놓은 택시 때문에 그 가수 노래를 듣지 못하고 갔다. 이미숙의 노래는 박선생님이 가려는 사람 붙들면서 들려주고 싶어할 만했다. 안동댐 옆 야산에 울려퍼지는 청아한 목소리는 나같이 단단한 가슴의 소유자도 빠져들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이미숙의 공연 시간에 맞춰 라이브 카페를 찾아다닐 것 같은 예감이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40대 후반에 좋아하는 가수 생기면 오빠부대 뺨칠지 어찌 알겠는가? 조금 추운 날씨였지만 모닥불, 군고구마와 음악 그리고 상현달이 어우러진 멋진 밤이었다.

 

  박선생님 덕분에 좋은 밤을 보냈으니(철학 하는 사람이 이렇게 감성적이어도 되나?) 국학진흥원 홍보라도 해야겠다. 사람이 얻어먹었으면 성의는 보여야지.

 

  한국국학진흥원 홈페이지는 http://www.koreastudy.or.kr 이고 국학진흥원의 유교문화권 역사체험 홈페이지는 http://tour.koreastudy.or.kr 이다. 특히 유교문화권 역사체험 홈페이지는 경북 북부 지역을 여행하려는 계획이 있는 사람은 꼭 방문해야 할 사이트다. 아는 만큼 보이다고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