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귀여운 스님

안동에 사노라면 2009. 4. 28. 02:10

권위주의 시대에 항간에 떠돌던 우스개 소리 수준의 퀴즈가 있다.


“목사님(혹은 신부님 스님도 좋다)과 경찰서장과 세무서장이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면 누가 밥값을 낼까?”


여러 가지 답이 있겠지만 답은 ‘식당주인’이다. 주로 대접을 받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권위주의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우스개 소리이기도 하다. 위에 언급된 분들을 폄하하고자 하는 뜻은 전혀 없다.


이번엔 다른 퀴즈를 한 가지 내겠다.


“가난한 예술가와 스님이 만나 식사를 하면 누가 밥값을 낼까?”


답은 ‘근처에 있는 선배가 불려나가서 낸다.’이다. 지난 수요일 오전 친하게 지내는 0 작가(사진작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배님 점심은요?”

“나 점심 안 먹는 것 알잖아요.”

“오늘 00 스님과 점심 약속 있는데 같이 안 하실래요?”

“그런 유명한 분과 점심을 같이 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그냥 두 분이 드세요.“


점심시간에 그 친구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선배님, 스님같은 종교인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밥값을 내게 하면 안 되겠죠?”

“아무래도 그건 그렇지 않겠어요?”

“그럼 선배님이 나오셔야 하겠는데요. 무주무 칼국수집으로 갈 계획인데 정문 앞에 나와 계시면 태우러 갈께요.” 


나보고 밥값을 내러 나오라는 이야기다. 0 작가의 이런 당당한 넉살이 밉지 않다. 칼국수 세 그릇이면 만원이 조금 넘을 것이고 스님이 수육 드실 일은 없고 기껏해야 배추전 한 가지 추가할 터이니 많아도 2만원을 넘지 않을 게다. 그런 유명한 분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이 정도라면 투자할 가치가 있다. ‘그래 나는 봉이야.’ 이렇게 해서 밥값을 내기 위해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0작가의 차에 오르니 뒷좌석에 그 스님이 타던 자전거가 있고 앞에 그 스님이 타고 있다. 그 스님은 자신이 불편한 뒷좌석에 타겠다고 우겼지만 나도 제법 고집이 있는 성격이라 내가 뒷좌석에 타고 무주무 국수집으로 향했다. 국수집에서 보니 그 스님의 모습은 얼굴은 볕에 그을려 새카맣고 깡으로 뭉쳐진 듯한, 상상하던 그 모습이다. 식사를 하는 중에 긴장한 나는 말을 삼갔다. 평소의 경험으로 판단할 때 고수와 만났을 때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그나마 본전이나 건진다. 묻는 말에 몇 마디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식사를 마쳤다. 배추전도 시키지 않았으므로 식사비는 1인당 3천 5백 원 해서 만 5백 원이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상황이 이상해진다. 0 작가는 오후에 봉화에 가야 한단다. 그 스님께 봉화로 같이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묻긴 하는데 별로 같이 가고 싶은 눈치는 아니다. 그 스님도 봉화에는 갈 생각이 없다고 하고. 그 스님의 숙소까지는 꽤 먼 거리로 그날처럼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오전 내내 자전거를 탄 스님이 다시 자전거로 가기는 무리다. 마음약한 내가 덜컥 약속을 하고 말았다. 퇴근 시간까지 안동 시내에 계시면 퇴근 후에 태워드리겠다고. 그 스님은 어떻게 결정하든지 전화는 하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그 스님께 전화가 왔다. 약속장소를 정하고 만나서 그 스님과 자전거를 태웠다. 깡으로 뭉쳐진 스님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 스님은 이동하는 동안 쉬지 않고 쫑알쫑알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도 설법 비슷한 내용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이 스님이 과연 죽음의 무턱까지 가도록 단식을 하던 그 스님이 맞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스님이 묵언수행을 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하긴 그렇게 끊임없이 무슨 이야기를 쫑알쫑알 이야기하는 것이 그 스님의 수행 방법일 지도 모를 일이다.


숙소로 가기 전에 낙동강 습지에 관심이 많은 그 스님의 관심 장소인 구담 쪽으로 가다가 부용대를 들러 하회마을의 원경을 보여드렸다. 절벽이라 안전선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내 당부에 “저도 무서워서 높은 곳에 못 올라가요. 저도 알고 보면 겁이 많은 사람이에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할 때는 차라리 귀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옥연정사를 보여드리러 갈 때는 지난해부터 그곳에 살고 있는 가족을 만났다. 그 가족들이 보기엔 내가 ‘스님의 남자’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스님 보고 나오세요.” 하면서 먼저 주차장으로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깡으로 뭉쳐진 사람으로 생각한 그 스님의 고집을 꺽기도 했다. 차에 타서 안전벨트 매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내가 고집을 피워 기어이 안전벨트를 매도록 만들기도 했다. 숙소에 태워드리고 왔는데 유명한 스님을 태워드렸다는 생각보다는 ‘귀여운 여인’을 태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월요일 아침 인터넷에는 그 스님이 대법원에서 업무방해죄로 유죄 판결(집행유예)을 받았다는 기사가 떴다. 자료 화면엔 포클레인 앞에 가부좌를 틀고 공사를 막고 있던 그 스님의 모습이 보였다. 이 스님이 그 스님이긴 한거야?

 

- 특정 스님을 추측하여 고유명사로 댓글을 달면 삭제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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