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신종 플루 습격사건

안동에 사노라면 2009. 10. 28. 17:16

8월말 신종 플루 진료소가 만들어질 때 이놈을 며칠 상대하다가 내과에 관리를 넘겨준 후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한동안 잠잠한 듯 하더니 10월 들면서 이놈이 본격적으로 극성을 부리기 시작하고 있다.


10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 딸내미 생일이라 가족끼리 아침을 잘 먹고 케이크까지 잘랐다. 그런데 식사 후에 딸내미가 열이 난다고 하면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일단 두통약으로 많이 쓰이는 해열제를 사와 먹이니 나니 별로 아파보이진 않는다. 저녁 때보니 약간 기침도 하는 것 같다. 안동 지역에 확진 환자가 많이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때라 혹시 싶었다. 8월말 며칠 신종 플루 환자 진료를 볼 때 확진을 받은 아이도 잠시 열이 난 것 외에는 별 증상도 없다며 씩씩한 모습으로 진료소에 온 기억이 났다. 학교에 보낼까 말까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벌써 학교에 가고 없다. 그러려니 했는데 오전에 딸내미에게서 문자가 왔다. 열이 나니 검사를 받고 오라고 학교에서 추방당했단다. 호흡기내과에 환자 등록을 해달라고 한 후, 내손으로 검체 채취용 기구를 이용해 인두 부분을 문질러 검체를 받아 확진검사를 의뢰하고 감기약 3일분을 처방받아 집에 데려다 줬다. 화요일 저녁, 검사 센터 직원으로부터 딸내미가 양성이란 통보를 받았다. 아내는 속이 타는데 딸내미는 무덤덤한 표정. 그날부터 멀쩡한 상태로 일주일을 집에서 보냈다. 


월요일부터 아들도 약간 기침을 하는 것 같았다. 열도 없었다. 딸아이가 양성 판정을 받았으니 아들도 검사는 해보자 싶어 수요일 검체를 채취해 검사 센터로 보냈다. 금요일 오전 결과가 나왔는데 아들도 양성. 고3이 일주일간 집에 있으려니 생으로 몸살을 한다. 몸살감기라고도 불리는 독감의 일종인 신종 플루 때문이 아니라 멀쩡한 채로 갇혀 지내니 생으로 몸살을 하는 것이다. 수능이 코앞인데 공부는 해야 하고, 집에서는 공부가 될 리 없고. 급기야 이번 주 월요일 학교에 쫓아가더니 내일부터 오라고 하더라며 쫓겨왔다. 짜식 진작 그렇게 공부를 했으면 지금 놀아도 덜 답답할 것 아냐.


집에는 타미플루가 있다. 8월말 신종 플루 환자를 진료하고 나니 병원에서 지급한 약이다. 원래의 지침은 보호 장구 없이 신종 플루 환자를 접촉한 의료인에게 주도록 되어있다. 나는 보호 장구를 확실히 하고 접촉했으니 투약 대상자는 아닌데 주니 받아놓은 것이다. 아이들 둘이 신종 플루 확진을 받았는데도 아버지라는 인간이 타미플루 약 처방을 받아올 생각은 않고 대증요법 감기약만 먹이고 있으니 아내가 속이 탄다. 더군다나 집에 약을 두고도 먹이지 않으니 남편이 밉기까지 하다. “남들은 못 먹여서 야단인데 있는 약이라도 먹여야 할 것 아냐?” 그렇다고 꿈쩍할 내가 아니다. 가벼운 증상으로 끝날 것이 확실한 아이들에게 약을 먹여 낭비할 생각도 없고, 내성 바이러스 출현에 일조할 생각도 없다. 타미플루는 고위험군이나 증상이 심한 환자에게 주는 것이지 살짝 앓다 마는 것 같이 지나가는 젊고 건강한 청소년에게 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약을 좋아하는 아들이 이 약을 먹고 싶어 했는데 한 알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최근 유행하는 신종 플루는 해마다 조금씩 생기는 계절 독감보다 증상이 가볍다는 느낌이다. 의심되면 무조건 확진 검사를 하고, 확진되거나 의심되면 무조건 타미플루를 처방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항바이러스제는 신종 플루를 포함한 독감 환자 중에서 고위험군(고령, 5세 미만 소아, 임산부나 당뇨, 폐질환, 심장병 등 질환을 가진 사람)이거나 증상이 심한 환자에게만 투여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한다.


딸내미가 밥을 잘 남기는데 평소 그 밥은 내가 주로 먹었다. 그런데 지난 주 아침 식사 후에 딸내미가 밥을 남기니 아내가 아무 망설임 없이 그냥 먹어버린다. 그 후 어떻게 되었냐고? 아직 열이 난 일도 없고 기침도 하지 않고 멀쩡하다. 사실 아내는 어린 시절 전염병에 걸려 신문에 난 일도 있다. ‘대구에서 디프테리아 발생’이라는 기사의 주인공이었다고 늘 자랑한다. 그래서 그런지 신종 플루도 아내에게는 시비를 걸지 못하고 있다. 1950년대 후반 유행한 아시아 독감에 노출된 사람은 그 때 생긴 항체가 일부 남아서 이번 신종 플루에 잘 걸리지 않거나 걸리더라도 경하게 앓는다는 설이 있는데 60년대 초반도 그 독감에 노출되어 항체가 생긴 것인지도 알 수는 없다.  


자녀들을 데리고 병원에 오는 지인들도 많다. 지난 토요일 어느 지인은 아들을 데리고 왔다가 혼자 내 사무실로 찾아와 감염내과 의사가 “신종 플루가 의심되는데 굳이 검사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약만 처방받아 가십시오.”라는 감염내과 의사의 권유대로 검사를 않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잘 했습니다. 그냥 집에서 일주일 데리고 있으면 되겠네요." 하고 보냈는데 오후에 아들을 데리고 다시 왔다. “검사도 않고 왔다고 마누라에게 엄청 욕먹고 다시 오는 길입니다.” 하면서 욕먹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엄마들의 심정이 다들 같은 모양이다. 검사를 해서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아이를 학교에 보낼 욕심으로 검사를 꼭 받도록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런 엄마들의 기대와 어긋나게 요즘 증상이 의심되어 검사를 하는 학생은 양성이 나오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딸내미가 학교에 가니 그 반에는 이제 등교를 않는 아이가 없고 다른 반에도 등교를 않는 아이가 몇 명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내는 이런 해석을 한다. “이제 엄마들도 꾀가 생겨서 증상을 숨기고 등교시키는 모양이다.” 음, 집에 놀리고 나니 속이 많이 상하는 모양이다.


요즘 병원은 신종 플루로 비상 대책 회의를 자주 열어야만 할 정도로 환자가 붐빈다. 오늘은 급기야 이번 주에는 검사 결과가 많이 늦어질 것이라는 검사 센터의 통보가 와서 해당 과에 검사를 자제하라고 연락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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