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바담풍

안동에 사노라면 2006. 5. 16. 02:07

  열흘 전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상당히 높은 직책에 있는 분이 찾아왔다. 부탁이 있단다.  의료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 상담을 좀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처음에는 검사 결과를 가지고 상담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 이름으로 나가는 검사를 재점검하는 의미도 있고 해서 두말없이 그러겠다고 했다. 사실 거절하기도 힘들다. 고위직의 부탁을 거절하면 밥벌이에 문제가 생길 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막상 상담을 시작하려고 하니 검사 결과 상담이 아니다. 처음 찾아올 때 건강과 관련된 생활 습관 등에 관한 상담이었다. 술, 담배, 비만 등 건강의 적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내가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맡은 일은 해야지. 이럴 때 나쁜 습관을 가진 의사들이 하는 자기 변명이 있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하되 따라하지는 마라.'

 

  상담을 담당하는 분이 출장 검진을 가는 날 대타로 내가 상담을 맡는다. 상담을 맡은 날은 좀 긴장된다. 술 냄새 풍기면 안되니까 전 날은 술도 조심하고, 상담하러 가기 전엔 담배 냄새 나지 않게 입도 헹구고, 비누로 세면까지 다시 한다. 주로 하게 되는 이야기는 술, 담배, 운동과 관련된 부분이다. 미리 설문지에 표기를 해서 들어온다.

 

1. 담배 하루 반 갑에서 한 갑, 술 거의 안 마심.
  "담배 해로운 것 아시죠?"
  "예, 끊으려고 몇 번 시도했는데 잘 안 되네요."
  "여긴 원래 잔소리 들으러 오는 곳입니다. 해로운 것 아시면 끊으셔야죠."
  "예."

 

2. 담배 하루 반 갑에서 한 갑, 술 자주 마심
  "(나랑 비슷하군.) 말이 반 갑에서 한 갑이지 술 마시는 날은 한 갑 넘죠?"
  "(어떻게 알았을까?) 예, 술 마시는 날은 많이 피우죠."
  "술에 담배까지. 정말 이러시면 안 되는데. 빨리 끊으시고 술도 줄이셔야죠."
  "예, 그게 잘 안 되네요."
  "담배는 끊으려고 시도한 만큼 이익이니 실패했더라고 금연을 다시 시도하시지요."
  "예,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3. 담배 한 갑 이상
  "(완전 골초잖아. 따끔하게 한 마디 해야지. 왜? 나보다 더 피우니까.)
   담배는 폐암 같은 암뿐만 아니라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유발합니다.
   이 병은 어떤 측면에서는 폐암보다 무섭습니다.
   나중에 호흡도 가쁘고 가래도 끓고 손자들이 근처에 오지 않습니다.
   꼭 끊으셔야 합니다."
  "그게......"
  "아니, 정말 큰일 난다니까요. 꼭 끊으셔야 합니다."

 

4. 술 주 1~2회, 1회 소주 1~2병
  "(나랑 비슷하네.) 말이 1~2회지 그건 희망 사항이고 실은 이보다 많을 때가 많죠?"
  "(어떻게 알았을까?). 예. 직장 생활하다 보니까 잘 안 되네요."
  "표현은 소주 1~2명이지만 맥주도 드시지요? 좀 줄이셔야 겠습니다." 
  "예."
  "꼭 줄이셔야 합니다.(나도 그러고 싶어.)"

 

5. 술 주 3~4회 이상
  "(이건 너무(나보다) 심하잖아.) 아니, 이렇게 술을 많이 드세요? 큰일나겠네."
  "......"
  "술은 간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금단 현상과 알콜성 치매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가족들 고생시키고 본인도 힘들어집니다. 끊으시든지 확 줄이셔야 합니다."
  "......"
  "심각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 외에도 비만 등의 상담은 내가 좀 찔린다. 다행히 앉아 있어 내 배가 보이지 않고 요즘 내 얼굴에서는 크게 비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운동이야 나도 매일 하는 편이니 양심에 찔릴 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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