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당은 서애 유성룡 선생의 후손들이 사는 종가이다. 하회 유씨 전체의 종가인 양진당을 길 하나 사이에 두고 있다. 양진당과 충효당의 입춘첩은 그 내용은 비슷하나 가로로 붙이는 입춘첩의 방향 등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두 집 입춘첩의 차이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충효당 정문 우측의 입춘첩
- 모든 때에 평화롭고, 모든 해가 풍년이 되길 빌고 있다. -
충효당 대문 좌측의 입춘첩
-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기를 비는 뜻 -
양진당 대문의 입춘첩이 성인을 경외하고 어른의 말씀을 잘 들으라는 개인윤리를 강조한 입춘첩인데 비해 충효당은 평화와 풍년,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편안함 등 좀 더 사회, 국가적인 기원을 담고 있다. 두 형제의 차이가 입춘첩에서도 보이는 듯 하다.
충효당 본채(아마도 사랑채인 듯) 방문 위의 입춘첩
- 승우여운 뛰어난 벗들이 구름처럼 모여들라는 뜻인 모양이다. -
(책갈피님의 블로그에서 알게 되었는데 이 구절은 왕발의 등왕각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등왕각서 본문은 책갈피님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사랑방의 용도에 맞는 글귀다.
양진당의 가로로 붙인 입춘첩은 오른쪽을 향하고 있고
충효당의 가로로 붙인 입춘첩은 왼쪽을 향하고 있다.
서애 선생이 좌파였나?
충효당 본채(아마도 사랑채) 방문 위의 다른 입춘첩
- 글로써 벗들이 모인다는 뜻 -
충효당 본채 뒷문의 입춘첩
- 학문은 우수하고, 벼슬은 올라란 뜻 -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조선시대 양반에게는 기본
충효당 입춘첩 중에는 재물이 많아짐을 비는 입춘첩도 있다고 하니
학문, 벼슬, 재물, 친구 이 네가지는 양반의 네 가지 덕목인 모양이다.
충효당 내당 출입문의 입춘첩
- 전형적인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다. -
사진을 찍진 못했지만 하회마을 홈페이지( http://www.hahoe.or.kr)에 있는 충효당의 입춘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國泰民安, 歲和年豊(솟을대문의 좌우) - 사진에서는 시화연풍으로 되어 있다.
○ 泰回, 三陽(중간 좌우)
○ 取之無禁, 充隘露積(고방문)
○ 敬天愛人(통방문)
○ 積於外(뒤주)
○ 靜坐看書一昧長, 忠孝之外無事業(사랑문좌우)
○ 勝友來雲, 以文會友(사랑방 측문 좌우) - 사진에는 승우여운으로 되어 있다.
○ 以文會友, 學優登仕(우측 사랑방문)
○ 敢告己未立春(사당문),
○ 立春大吉, 萬事亨通(일각문), 萬壽無彊, 財數大通(祖母房門 우좌)
○ 笑門萬福來(祖母房 후문)
○ 萬事如意(모방, 新婦房 앞문)
○ 靜坐看書一昧長(新婦房 뒷문)
○ 金帛陳陳(祖母房 다락문)
○ 降福洋洋(안방 옆문)
○ 萬堂和氣(안방옆문 중앙)
○ 笑門萬福來, 家和萬事成(안방문 우좌)
○ 薪永自足(부엌기둥)
○ 瑞雲祥日, 建陽多慶(부엌문 우좌)
○ 甘且旨(장광문)
○ 充於內(도장문)
○ 立春大吉, 建陽多慶(안문 우좌)
○ 酒肴陳陳(안방 다락문)
○ 用之不竭(곳간문)
재물을 관리하는 문들의 입춘첩이 재미있다. 곳간문의 用之不竭(용지부갈)은 아무리 써도 곳간이 마르지 않는다는 뜻이고, 뒤주문의 積於外(적어외)와 도장문의 充於內(충어내)는 밖에서 쌓이고 안에서 찬다는 뜻인데 서애 유성룡의 종택도 재물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하긴 절개의 상징인 정몽주도 자신의 시에서 風流太守二千石(풍류태수이천석 이요), 邂逅故人三百杯(해후고인삼백배 라)고 풍류를 즐기는 사람(아마도 자신)은 재산이 나락 2천섬의 가을걷이 정도는 되어야 하고 옛친구를 만나면 술을 3백잔은 마셔야 한다고 했으니 성리학자라고 해서 재산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남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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