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꿈을 찾는 사람들

안동에 사노라면 2011. 2. 27. 22:47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안동의 지인 중에 사진작가가 한 명 있다. 블로그에서 처음 만났는데 알고 보니 중학교 3년 후배였다. 대단한 마당발로 단골 막걸리집에 같이 가면 우리 일행 외에 반드시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군사훈련을 받고(공군기술학교), 태권도 사범 경력도 있는 사람답게 성격이 상당히 괄괄하다. (전성기 때 태권도 자세 사진을 봤는데 두 다리의 각도가 180도였다.) 중학교 3년 선배인 나에게도 절대 고분고분한 법이 없다. 옆에서 들어보면 전화도 터프하게 받는다. 심지어 딸들에게도 터프하게 전화를 받는다. 이런 사람에게도 천적은 있는 법이어서 단 한 사람에게만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통화를 한다. 당연히 안방마님이다. 돈도 잘 벌지 못하면서 매일 밖으로 돌아다니는 남자의 생존비법이리라. 매일신문 사진대상도 받고 사진으로 석사 학위도 받았지만 지인들이 만나면 그저 동네 술꾼으로 대할 뿐이다. 전시회를 하는 인물 사진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교실을 열어 초보자들을 지도하는 한편 재작년에는 안동의 유적, 유물 사진을 찍느라 안동의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고, 지난해는 매일신문과 경북의 음식, 경북의 전통주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요즘은 각 문중의 불천위 제사 사진을 찍으러 밤마실을 자주 다니고 있다.  

 

 

 

2월 중순 이 작가가 안동에서  ‘꿈을 찾는 사람들’이란 주제의 세 번째 인물 사진전을 열었다. 이 작가의 사진전은 두 번째 전시회부터 봤는데 그때는 남후면의 농공단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주로 찍어서 좋은 평을 받았다. 이번에는 작가가 안동에서 만나는 지인들의 사진을 올렸다. 일상을 같이 하다가 그 사람의 이미지를 잘 나타내는 순간을 포착해서 찍은 사진들이다. 찍힌 사람들은 언제 자신이 찍힌 줄도 모르고, 어디에서 찍혔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작가가 찍은 사람들 중 본인의 동의를 받은 44명의 사진을 이번 전시회에 내어놓았다. 각 인물마다 작가가 생각하는 그 인물의 평을 한자어로 곁들였다. 안동에서의 활동 경력이 어느 정도 되니 이번 전시회에는 시장을 비롯한 높은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사위를 백수로 대하던 장인어른도 조금 달리 보더라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사진전에 올라온 인물 중 일부를 소개한다. 도록을 스캔하려니 일부 잘리기도 하고, 화질도 떨어진다. 사진 수준 떨어뜨렸다고 씩씩거리며 따지러 오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안동에서 고택체험을 가장 먼저 시행한 지례예술촌의 노종손 어른이다.

   명필로 유명하다. 90세기 넘은 분이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분이 89세에 쓴 글씨 한 점을 이 분의 집안 사람에게 얻어 보관하고 있다.

   작가가 선택한 인물평은 명경지수(明鏡止水, 고요하고 잔잔한 마음이다.)  

 

 

 

   한문 선생님. 안동에서 직장 밖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분이다.

   블로그에 여러 차례 언급한 일이 있다.

   작가가 선택한 한자평은 박이정(博而精, 여러 방면으로 널리 알 뿐만 아니라 깊게도 안다.)

 

 

 

 하회탈춤 전수자로 백정역을 맡고 있다. 젊은 시절 밤무대 연예인 생활도 했다고 한다.

 술에 관한 한 남에게 지지 않는 분이다.

 인물평은 격양노인(擊壤老人, 태평한 세월을 즐기며 세상사에 구속되지 않고 노래하며 산다.)

 

 

 

 가일마을의 병곡종택 종손이다.

 가족과 함께 찾았을 때 낯선 관광객에게도 음료수를 권하는 접빈객을 실천하는 분이다.

 가일마을은 이 블로그에 소개한 일이 있다. http://blog.daum.net/cordblood/6559240

 작가가 선택한 인물평은 오상고절(傲霜孤節, 굽히지 않는 절개이다.)

 

 

  대안학교 교감으로 일하다가 요즘은 시골에 서각 공방을 차려 들어앉았다.

  지난 겨울 안동에서 영덕까지 지인들과 학생 몇이 걸어가다 찍힌 사진으로 추정한다.

  작가의 인물평은 용사자약(龍蛇自若, 용이 날아오르는 모양으로 글씨체에 활력이 있다.)

 

 

 

   안동간고등어 광고에 자주 올라오는 간잽이 할아버지다.

   안동댐에서 고등어를 양식해서 간고등어를 만든다는 유언비어도 있다.

   작가의 인물평은 안동구어(安東求魚, 안동에서 물고기를 구했다.) 

 

 

 

  안동에서 진경산수를 그리는 동양화가. 봉정사 아래에 작업실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보는데 올해 첫 날 새벽을 어느 화가의 작업실에서 맞을 때 같이 있었다.

  요즘 그림이 일가를 이루었다는 평을 받는다.

  작가의 평은 사약급진(寫若汲眞, 붓끝이 참된 경물을 길어 올리듯 한다.)

 

 

 

  안동의 유명한 서예가.

  이 블로그에 한 번 소개한 일이 있다.  http://blog.daum.net/cordblood/13735509

  작가의 인물평은 음필대연(飮筆大椽, 취한 후의 필치가 큰 서까래만하다.)

 

 

 

  시인. 요즘 권정생어린이재단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이 블로그에 시집과 시서전을 소개한 일이 있다.

  http://blog.daum.net/cordblood/13107111              http://blog.daum.net/cordblood/13735542

  작가의 인물평은 화천조경(花賤鳥驚, 꽃 한 송이에도 눈물겹고 새소리에도 놀라 깬다.)

 

 

 

     2년 전 문경 주흘산에 산나물 캐러 갔다가 찍힌 사진. 찍힌 사람 밥벌이에 지장을 주는 사진이다.

     작가의 인물평은 의급구인(醫汲求仁, 의원은 어짐을 구하기에 급급해야 한다.)

 

이날 주흘산 조령원터 근처에서 훈장님께 들은 이야기 한 가지. 세도정치가 극성을 부릴 때 매관매직으로 벼슬을 산 인간들은 부임하면 갖은 명목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지방 관아의 아전들은 이들 벼슬아치들을 등에 업고 자신의 잇속을 챙기고 있었다. 영남 지역에 새로운 사또가 오면 아전들은 조령원에 가서 맞이했다는데 여기서 만난 신관 사또와 아전들의 대화


아전 : 사또 주흘산 아래 오셨으니 어찌 시 한 수가 없겠습니까?

사또 :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서) 그, 그래야겠지? 지필묵을 가져오너라.

         主屹山頂能㐐㐐(주흘산정능놀놀, 놀은  아래에 乙을 쓴 음역 글자)

아전 : 사또 무슨 의미옵니까?

사또 : 주흘산 정상에서 곰이 한 마리 노닐고 있다는 뜻이니라.

          (내가 주흘산 정상의 곰이다. 이놈아.)

아전 : (이놈 이거 천자문도 제대로 읽지 않았구만.

          곰 熊자와 능할 能자도 구분 못하잖아.

          그리고 놀 遊자도 몰라서㐐자로 음차를 했군.)

         사또, 참으로 멋진 싯구이옵니다.

         제가 무식하지만 댓구를 달아도 되올런지요?

사또 : (휴, 다행이다.) 그래. 너도 천자문은 읽었을 터이니 어디 댓구를 달아보거라.

아전 : 감사하옵니다.   

         貴家門前大兢兢(귀가문전대긍긍)

사또 : 무슨 뜻이냐?

아전 : 사또 같이 귀한 분의 문전에서

         제가 개처럼 끙끙대며 신명을 바치겠다는 뜻이옵니다.

사또 : 예끼, 이놈. 어찌 개 犬자를 이리 쓴단 말이냐?

         大자에 점이 없지 않느냐?

아전 : 사또께서 곰의 다리 네 개를 떼셨으니

         저도 개의 귀 한 쪽 정도는 떼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이렇게 백성의 고혈을 분배하는 대강의 비율에 대해 암묵적 합의를 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