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아우슈비츠를 출발해 프라하를 향했다. 가이드는 프라하의 연인을 틀어주었다. 본 기억이 없는 드라마였다. 저런 드라마가 있었구나. 어두워진 후에 프라하에 도착했다. 먼저 바츨라프 광장으로 향했다. 중세 보헤미아의 왕이며 인근 나라들의 왕을 겸했던 바츨라프 2세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광장이라기보다 넓은 길에 가까운 장소였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의 현장이다. 광장 정면에 있는 것이 국립박물관, 그 앞에 있는 동상이 바츨라프 2세의 동상이다. 바츨라프는 국난이 일어나면 동굴 속에 잠들어 있는 병사들을 깨워 적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당연히 국립박물관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사진 몇 장 찍고 걸어서 내려오는 것으로 바츨라프 광장 구경은 끝났다. 이런 것이 ‘참을 수 없는 패키지여행의 가벼움’이다. 바츨라프 광장을 떠나 구시가지 광장 인근에서 밤거리를 느껴 본 후 블타바 강(Vltava River), 까를 교, 강 건너편의 프라하 왕궁 야경을 보는 것으로 5일 저녁의 일정은 끝이 났다.
바츨라프 광장 정면의 국립박물관과 바츨라프 2세 동상
국립박물관쪽에서 본 바츨라프 광장
체코의 세종대왕이라 할 수 있는 까를 4세 동상
6일 아침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우선 왕궁(현재의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대통령궁 앞에는 흐라트차니 광장이 있고 영화 ‘모차르트’에 등장하는 주교궁과 가스등이 보인다. 광장의 한 켠에 특이한 건물이 한 채 있었다. 과거 상당히 부유한 영주가 왕궁 앞에 지은 건물이라는데 멀리서 보면 입체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림으로 입체감이 나도록 한 건물이다. 광장에는 체코의 초대 대통령 마사리크의 동상이 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대통령에 이르렀다는 인물이다. 이 동상의 위치를 결정할 때 체코 사람들이 이 위치에 동상을 세우기를 원했는데 현직 대통령의 집무실 창문에서 보이는 위치라고 한다. 이 동상 보면서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할지 생각 좀 하라는 뜻이다. 체코라는 나라는 대통령 해먹기 힘들겠다. 창문 앞에는 선배가 버티고 있지, 마당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떠들어대지.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체코의 초대 대통령이 된 마사리크는 체코 출신의 유대인으로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을 지낸 올브라이트의 롤 모델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마사리크 동상 앞에서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꽤 실력이 있어보였다.
가스등
돋을새김을 한 것 같은 벽체
가까이서 본 모양
체코 초대 대통령 마사리크 동상
광장의 악사들
대통령궁으로 들어가는 정문 앞에는 ‘싸우는 거인들’이라는 조각상이 있는데 18세기 후반에 이그나츠 플라체르가 만든 것으로 현재 보여주는 것은 20세기 초반에 복제한 것이라고 한다. 1526년부터 당시 체코를 다스리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피지배 민족인 체코 사람들을 위협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한다. 두 동상 사이에 있는 상징물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자였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이니셜이 디자인되어 있다고 한다.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대통령궁 앞에 동상과 나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상징물을 보존하는 체코 사람들도 대단하다. 대통령궁 안쪽의 정원과 비투스 성당은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성에서 옛 귀족들이 살던 길을 따라 내려왔는데 연금술사들의 거리 황금소로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싸우는 거인들
왕궁 쪽에서 구시가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까를 교를 지나야 한다. 14세기 까를 4세 때 지어진 다리로 강 양편에는 통행세를 받기 위해 만든 탑이 있다. 17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30개의 성인상을 다리 위에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전설을 품고 있는 성 얀 네포무크(Svateho Jana Nepomuckeho)의 상이 인기가 있다. 네포무크는 바츨라프 4세 시절 왕비가 부정을 고해성사한 내용을 왕이 묻는데도 대답하기를 거부해 고문을 받고 죽었는데 그 시신을 블타바 강에 던졌다고 한다. 그 후 다섯 개의 별이 나타나 시신이 있는 곳을 비추어서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네포무크가 왕의 정책에 반대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1721년 교황이 축복을 내리고(복자?) 8년 후 성인으로 추대되었는데 30년 전쟁 후에도 민간에 남아있는 후스파의 영향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네포무크의 동상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로 많은 사람이 만져 동상 아랫 부분은 반질반질한데 가이드 말로는 그 동상에 있는 바츨라프 4세의 바람둥이 왕비 등을 만지면 애인이 생기고, 바츨라프 4세의 개(왕이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의심하던 아기를 물어서 죽게 만들었다고 들었던 것 같다.)를 만지면 도리어 재수가 없고, 네포무크를 던졌던 그 위치에 있는 부조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어야 행운이 온다고도 한다. 어떤 설에는 네포무크가 유일하게 고해성사 내용을 말한 대상이 그 개인데 이 개를 만지면 애인이 배신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좌우지간 개를 만지는 것의 재수에 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니 알아서 할 일이다. 네포무크 상 소원 비는 곳 까를 교를 지나 구시가지로 향했다. 구시가지 광장에 들어서니 1365년 건립되었다는 틴 성당의 쌍둥이 첨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중에 알아보니 성당 바로 옆에 프란츠 카프카의 생가가 있다는데 볼 생각도 못했다.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다. 원래 쌍둥이 첨탑 사이에는 황금 성배(후스파의 상징)이 있었는데 1621년(30년 종교전쟁 와중)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황금 성배를 녹여 마리아상의 후광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가톨릭-후스파-가톨릭으로 소속이 바뀐 역사를 가진 성당이다. 구시가지 광장과 틴 성당 ㅣ가 구시가지 광장 가운데는 얀 후스의 동상이 있었다. 15세기 초 가톨릭의 세속화를 비판하다 결국 1411년 파문을 당했고, 1415년 화형을 당했다. 이 사건에 반발해 1419년에서 1434년까지 후스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1437년 얀후스의 추종자들이 이 장소에서 교수형을 당했고, 30년 전쟁 와중인 1621년에는 왕 페르디난트 2세가 프로테스탄트 귀족 24명의 목을 친 장소라 한다. 얀 후스 동상 신교도 처형 장소 체코 프라하는 유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구시가지 광장에는 유럽의 배꼽에 해당하는 부분을 표시하는 위치가 있다. 따라서 구시가지 중앙광장은 상업적 거래가 많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시간을 표시할 필요가 있어 옛날에는 이 유럽의 배꼽 위치에 기둥이 있어 길게 표시된 자오선에 기둥의 그림자가 오면 정오가 된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흐린 날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래서 전천후 시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1410년 시계공 미쿨라시(Mikulas of Kadan)와 수학자 얀 신델(Jan Sindel)이 공동으로 시청에 만든 천문시계다. 1552년 얀 타보르스키(Jan Taborsky)가 시계를 수리하면서 원래의 제작자로 프라하의 천문학자이며 수학자였던 하누시(Hanus)를 언급하였는데 더 이상 같은 시계를 제작하지 못하도록 하누시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7세기에 움직이는 조각상을 덧붙이고, 1865년과 1866년에는 사도들의 형상을 추가되었다고 한다. 유럽의 중심 정오의 그림자가 오던 선 시계는 위아래 두 개로 되어있는데 위쪽은 천동설의 원리에 따른 해와 달과 천체의 움직임을 묘사하였다. 아래쪽은 12개의 계절별 장면들을 그려두어 해당 달을 표시하였고, 성인의 축일로 날짜를 표시하였다. 위쪽 시계는 가운데 파란 지구를 중심으로 황금색 태양과 검은색 달 그리고 별모양의 북극성이 각자 다른 속도로 돌고 있고 판은 파란색 부분은 낮, 검은색 부분은 밤을 나타낸다. 갈색 부분은 아마 계절에 따라 달라지므로 그렇게 표시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가장 안쪽 별도의 원판은 바빌론의 시간을 나타내고, 제일 바깥원은 보헤미안의 시간, 중간원은 오늘날 중부 유럽의 시간을 표시한다고 하는데 정확히 이해하긴 어렵다. 바빌론의 시간을 나타낸다는 판은 다른 사진과 비교해 볼 때 움직이도록 설계된 것 같다. 시계 바깥에는 별자리 표시가 있는데 해, 달, 북극성이 현재 어느 자리를 지나는가 보여주는 모양이다. 천문시계 매시 정각이 되면 위쪽 시계 오른쪽의 해골 조각이 줄을 당기고 모래시계를 뒤집으면 12사도들이 두 개의 창을 통해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어서 시계 위쪽의 황금색 닭이 나와 울면서 시간을 나타내는 벨이 울린다. 위쪽 시계 양쪽의 조각에서 오른쪽의 모래시계를 든 해골은 죽음, 악기를 든 투르크인은 욕망, 왼쪽에서 거울을 인물은 허영, 돈자루를 든 인물 조각은 탐욕을 상징하지 싶다.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면 허용도, 탐욕도 욕망도 다 소용이 없다는 교훈을 알려주는 장치이리라. 아래쪽 달력 양쪽의 인물 조각은 역사 기록자, 천사, 천문학자, 철학자를 상징하는데 움직이지는 않는다. 단 20초 동안 진행된다. 천문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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