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책을 한 권 내게 되었다. 60대에 진입하는 기념 이벤트 성격도 있고, 17년을 넘긴 안동살이 보고서 성격도 있다. 아래에 <들어가는 말>을 소개한다.
공자는 중국 춘추시대 말의 뛰어난 학자이면서 교육자였다. 그는 신분과 권력뿐 아니라 지식마저도 세습되던 당시의 기본 틀을 깨고, 다양한 계층에까지 교육의 기회를 확대한, 당시로서는 개혁자이기도 했다. 필자는 공자를 성인으로 흠모하거나, 유교적 세계관을 지향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교는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필자의 삶의 많은 부분에는 유교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을 것이다. 유교적 가치는 문화 유전자인 밈(meme)을 통해 내게 전달되었을 것이고, 의식과 행동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내 속에 있는 공자’ 즉 내게 전달된 유교적 밈의 초기 모습을 더듬어보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공자에 대해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반면, 공자의 사상을 후세에 전한 제자들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적고, 단편적인 이야기들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전해진다. 필자는 다양한 문헌들에서 발견되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엮어보기로 했다. 필자는 이 책에서 인용한 많은 문헌들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여기서 다루는 37명의 제자들 중 일부는 실존인물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문헌은 그 문헌이 생산될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희망이 반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인된 역사서인 ≪사기≫도 많은 부분은 전승되던 이야기를 채록하여 역사에 편입하였다.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와 제자들 사이의 대화도 많은 부분 윤색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 역사적 사실을 고갱이로 해서 만들어졌을 터이지만, 그 고갱이가 무엇인지 밝히는 것은 역사학자들의 몫이다. 따라서 여기서 활용한 전승이나 설화가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는 이 책의 관심사가 아니다. 어느 문헌이 더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것인지도 관심이 없다.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필요할 때 필요한 문헌을 인용할 뿐이다. 그 이야기들이 비록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가치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소설가 이병주는 ≪산하≫라는 소설에서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는 표현을 한 일이 있는데, 진실이란 역사적 사실 속에, 설화의 이야기 속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그러한 것일까? 이야기를 나열만 할 수 없어 필자의 생각을 조금 곁들였다.
필자는 공자의 제자들을 하나의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들이라고 상상하고, 각각의 캐릭터를 구성하였다. ≪논어≫의 내용을 기반으로, 제자들 각자의 역할을 그 비중과 의미에 따라 단역, 조연, 주연으로 나누고 그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재미있게 쓰고 싶었는데, 마무리하고 보니 자료만 잔뜩 늘어놓은 지루한 책이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책이 될 희망은 없고,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참고서 역할이나 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나 수학 과목에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공부하는 유명한 참고서들이 있었다. 그 참고서들이 영어나 수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을 엮은 필자는 이야기 작가도 아니고 유학의 전승과정에 대한 전문 연구자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이 한 권의 참고서가 되어, 동양철학이나 한문학 관련 공부를 하는 학부생 및 석사과정 대학원생들이 논문을 준비할 때 작은 도움이나마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논어≫를 읽는 초심자들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공자 제자들에 관한 정보를 얻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필자 또래의 세대가 이 책을 보고나서, 책을 한 권 내어볼 용기를 가지게 된다면 더없이 기쁘겠다.
이 책은 이해영 선생님과의 어느 식사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50대 초에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2년간 동양철학을 공부한 일이 있는데, 선생님은 당시 필자의 지도교수이셨다. 필자는 공자의 제자들 이야기, ≪공자 사도행전≫을 쓰고 선생님은 퇴계의 제자들 이야기, ≪퇴계 사도행전≫을 써서 선생님의 칠순과 필자의 회갑이 되는 2021년에 같이 출판하기로 했었다. 선생님께서 개인사정으로 작업을 중단하시는 바람에 우선 필자의 책만 당겨서 출판하기로 하였다. 선생님께서는 많은 조언을 해주셨고, 교정도 여러 차례 봐주셨다.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겹친다. 초안을 순식간에 읽고 출판사를 추천해주신 안병걸 선생님, 선뜻 출판에 응해주신 문사철의 김기창 대표님, 몇 차례 조언을 해주신 박경환 선생님과 이상호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