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약속이 겹친다. 금요일 C씨와 토요일 오후 가벼운 등산을 하기로 약속해 놓고 나니 퇴근 때에 최선생이 토요일 오후에 우리 직원들이 소속된 부서에서(다른 사람이 보면 좀 이상하겠지만 나와, 같이 일하는 우리 직원들과는 직장에서 소속 부서가 다르다.) 체육대회를 연다고 한다. 가지 않으면 직원들 섭섭해 할 것 같아 일단 가는 방향으로 대답을 했다. 아내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경우 과감하게 한 약속을 취소하고 한 곳에 충실한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데 내가 그 정도로 결단력이 있었으면 벌써 어느 분야에선가 성공을 거두었지 이러고 살겠는가?
토요일 오전 두 약속 모두 챙기기로 마음을 먹는다. 체육대회가 한 시 반에 시작된다니 우선 체육대회에 얼마간의 찬조금과 함께 얼굴을 내밀고 두 시에 C씨와 만나 안동대 뒷산을 오른 후 다시 C씨와 함께 혹은 혼자 체육대회 장소로 와서 한 경기 정도를 동참하면 되겠다는 계산을 했다. 오후가 되니 처음부터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한다. 체육대회는 두 시가 거의 다 되어 시작되었다. 인사를 한 후 양해를 구하고 출발하려니 두 시 오 분이 되었다.
급히 안동대로 차를 몰았다. 교문에 들어설 때쯤 C씨의 전화가 왔다. 한 20분 늦었다. 만나서 C씨의 의견을 물어봤다. 혹 축구 좋아하느냐고. 좋아한다면 한 경기 뛰러 가자고. C씨는 어릴 때 해 보고는 한 일이 없단다. 그럼 그냥 산에 가야지. 안동대 뒷산에 올라 안동호를 바라보며 땀을 식힌 후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뱀도 보고. 내려온 후 C씨에게 체육대회 장소에 갈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C씨는 가고는 싶은데 열 시에 약속이 있어 곤란하다고 다음에 가겠다고 한다. 다섯 시가 다 되어갈 때 쯤 다시 체육대회 장소로 갔다. 도착하니 이제 축구 경기가 있다고 나보고 뛰란다. 전후반 15분씩 뛰는데 후반전에만 뛰겠다니 전반전에 뛰란다.
걷기 운동은 열심히 했지만 뛰어본 일은 까마득한지라 조금 뛰니 숨이 차다. 뒤에서 어정거리며 오는 공이나 차곤 했지만 역시 뛰는 것은 걷는 것과는 다르다. 축구 경기 중계를 보면 후반전이 끝나갈 때쯤 체력이 모자라는 선수들이 뛰지 않으면 아나운서와 해설자가 저러면 안 된다고 비난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 경우는 10분만 뛰어도 더 이상 뛸 마음이 없어지는데 80분 정도를 뛴 선수들의 상태야 오죽하겠는가? 앞으론 그런 선수들 이해하기로 한다.
전반전 15분 중 10분쯤 지나 내 근처로 공이 온다. 상대편 선수보다 내가 더 가까운 위치. 열심히 뛰면 내 공이 될 확률이 높다. 어정거리던 나도 열심히 뛰어 공을 잡으러 갔다. 몇 발짝만 뛰면 내 공이 되려는 순간 퍼벅. 넘어지면서 손바닥과 무릎을 갈아붙였다. 뛰던 속도대로 다음 발이 앞으로 나올 것을 확신하고 몸은 자연스레 그 속도에 맞추어 앞으로 나간 상태. 그런데 내 뒷발이 나의 믿음을 배신하고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대로 앞으로 쓰러진 것이다. 쌀 한 가마니가 달리다 넘어졌으니 제법 다쳤겠다 싶었는데 예상보다 부상은 심각하지 않아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바지가 찢어지며 무릎이 까지는 정도에 거쳤다.
경기 전에 박지성처럼 멋있게 넘어지는 장면을 상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래 바닥에 내 체중으로 그 흉내를 내며 넘어졌다간 몇 개의 뼈는 골절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아예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다. 또 내 주변 30 cm 내에 다른 사람이 있었더라도 다른 사람 발에 걸려 넘어진 것으로 오해를 해 주기를 바랄 수도 있었을 테지만 불행히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육중한 체중을 가진, 선수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특별 게스트 수준의 선수 아닌 선수가 넘어지니 주변의 젊은 친구들이 걱정스레 바라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털고 일어나는데 갓 마흔이 넘은 임계장이 경험이 있는지 이해가 잘 된다는 듯 한 마디 한다.
"몸이 말을 안 듣지요?"
무릎이야 빨간 약 좀 바르면 끝나겠지만 새로 산 바지가 아깝다. 마음에 드는 바지였는데. 일본 간다고 사 준 바지인데 아내에게 한소리 듣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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