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홍어를 두 번 먹다

안동에 사노라면 2005. 1. 27. 10:11

어제는 만나자는 사람이 많은 날이었다. 그 전날 밤늦게까지 마신 터라 어제는 술자리 피하고 싶었는데 그런 내 속사정을 알 리 없는 분들이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먼저 병원의 공식 회식이 있는데 이 자리는 일찌감치 빠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오전에 1년에 서너차례 모임을 가지는 봉사관 우선생이 전화가 왔다. 저녁에 약속이 있냐고.

 

"약속은 없는데 어제 많이 마셔서 속이 좀... "

"그럼 저녁에 시간 잡겠습니다."

이런 걸 요즘 젊은 사람들이 씹혔다고 하는 모양이다. 

 

오늘도 피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오후에 정진홍 선생님 전화가 왔다. 정진홍 선생님은 청도에서 공중보건의 할 때 초임 교사로 계시던 분이다. 같이 근무하던 치과 선생님과 고등학교 동기여서 알게 되고 나중에는 한겨레신문 독자모임(요상하게 들리겠지만 당시 경상도 그것도 시골에서는 이런 의미도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에서 더 친해진 것 같기도 한데 그 분이 그 모임에 있었는지 기억이 삼삼하다. 또 당시 전교조 관계로 해직된 상태로 있던 아내와도 경북지역 전교조 모임을 통해 아는 사이여서 더욱 친하게 지냈다.

 

15년이 지나 안동에 오니 안동에 재직하고 계셨다. 병리과장 이선생님과 동기여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한 번 술자리 같이 한 후 1년 반이 지났다. 지난 연말에 만남을 시도했지만 아이들 진학지도로 워낙 바쁘셔서 기회가 없었다. 정 선생님 모친상 때는 가 보지도 못했다. 미안해 하고 있는데 전화가 오니 반갑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본론으로 들어갔다. 술자리 약속.

 

 

  "언제 하실까요? ( 제발 오늘만은 아니었으면)" 

  "언제라도 좋은데 말 나온김에 오늘 뵐까요?"

  - 번개처럼 머리를 굴린다.

    정선생님 술자리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봉사관 모임은 심야까지 이어질 거고

    정선생님 술 약해서 일찍 가실테니

    봉사관 모임은 2차쯤에 합류하겠다고 하자.

  "예. 그러시죠. 메뉴는 뭘로 할까요?"

  "홍어 어떻습니까?"

  "좋지요."

 

 

퇴근 후 내 차로 옥동을 갈 때까지 두 사람이 가고자 하는 집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우리 집 근처의 홍어집. 정진홍 선생님은 차명숙 선생님이 하는 홍어집. 80년 광주의 그 분이 하는 홍어집이란다. 지나가면서 그 집을 보면서 간판 아래에 이름이 있기에 '주인이 홍어 요리에 아주 자신이 있는 분인가보다.' 하고 지나치면서도 80년 광주와 관련지을 생각은 못했다. 이제 알게 되었으니 홍어 먹을 단골집은 정해졌다.

 

들어가니 내 나이 정도의 보통 아줌마다. 맞다. 그 때의 젊은 여성이면 지금 나만큼은 늙은 것이 당연하지. 정선생님과는 구면인 듯 인사가 반갑다. 삼합으로 먹는데 돼지고기 새로 삶은 것이 없어 식은 돼지고기를 먼저 내는 것이 마음이 쓰이는지 새로 삶은 돼지고기 나올 때까지 빨리 먹지 말고 천천히 먹고 있으라고 몇 번이나 당부를 한다.

 

2차 가서 맥주 한 잔 더 하고 집으로 가려다 아내를 불러냈다. 홍어 먹으러 가자고. 조금 빼다가 아내도 가기로 한다. 11시 반이 넘어 문 언제 닫는지 물으며 다시 들어가니 사장님 웃는다.

 

" 집사람이 먹고 싶어해서..." 변명하며 다시 삼합을 달랜다. 1차에서 정선생님 막걸리 안 받아서 못 먹었는데 이번엔 제대로 삼합에 막걸리로 구색을 맞춰 마셨다. 둘이서 막걸리 두 주전자를 비우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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