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어머니의 중국여행

안동에 사노라면 2004. 8. 27. 01:48

  금년 8월에 살면서 이루어야 할 목표 중 한 가지를 달성했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니다. 어머님 돌아가시기 전에 해외여행을 꼭 한번 시켜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생겨 중국 여행을 다녀오시게 되었다. 아내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들들의 이런 바람에 대해 효자족 혹은 마마보이족이란 호칭을 붙이며 기피대상 남성에 포함시키겠지만 40대 남자인 나로서는 아주 중요한, 꼭 이루어야 할 인생의 목표 중 한 가지이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두 번 외국에 나갈 때마다 신경이 쓰였고, 이번 여름에도 외국 여행을 포기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한 가지가 어머님이 아직 외국 구경을 못한데 있기도 했다. 

 

  어머님 다니시는 교회에서 부부동반으로 여행하는데 사촌누님이 어머님을 꼭 모시고 가겠다고 해서 이루어진 이번 중국 여행은 4박 5일 일정으로 상해와 북경을 둘러보는 관광이었다. 여행 기본경비는 내가 내고, 누님은 여행시 입으실 옷을 해 드리고, 현지 경비는 어머님이 담당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어머니 여행 동안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는 누님이 주로 담당하고 나도 이틀을 휴가내어 식사당번 하러 갔다. 가서 식사만 몇 번 겨우 챙기고 나머지 시간은 아들과 조카에게 맡겨놓고 사람들 만나러 다녔지만.   

 

  여행 출발전 대구로 가서 외국여행을 위한 사전교육을 실시했다. 단체관광이니까 특별히 걱정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아시고 가야 할 사항들을 챙겨드렸다. 중국에 갈 때는 별도로 환전하지 않아도 한국돈을 쓸 수 있다든지, 호텔에서 나올 때는 팁 천원을 두고 나오라든지 등등. 마지막으로 돈은 먹고 마시는 일 외에는 쓰지 마시라는 내용도 잊지 않았다. 쇼핑 따라가서 보면 싸고 좋아 보이는 물건들도 가지고 오면 대개는 쓸모없는 물건으로 전락하니 아무리 사고 싶어도 절대 사지 말고 손자 줄 학용품이나 기념으로 사 오시라고 했다.

 

어머니, 천안문광장

 

  여행을 마치고 오신 어머님과 통화를 했다.

- 이런 저런 안부 -

 

"뭐 많이 사지는 않았지요?"

"하나도 안 샀다."

"손자 학용품은 사지 그랬어요. 먹는 것에는 돈 좀 쓰잖고 " 

"임시정부 건물터에 갔디(더니)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 너무 힘들게 살았더라. 그 사람들 그래 힘들게 독립운동 했는데 요새 우리는 돈을 외국에 흥청망청 쓰로 오는구나 싶더라. 그래서 남의 나라에 돈 보태기 싫어서 하나도 안 샀다. 남들은 과일도 사 먹고 하던데 그것도 안 사 먹었다. 진주 파는데 갔디 자야(사촌누님)가 너거 누부(누나) 주구로 진주 목걸이 사라 카던데 그거 사와바야 너거 누부 사치하는 아도 아이고 서랍에 넣어 놓고 있다가 못쓰게 될낀데 싶어가 안 샀다. 대신에 대구 와가 같이 간 일행들 점심 안 샀나. 무헌이는 델꼬 나가가 신발 하나 사 주고."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초등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어머님이지만 배운 대로, 아는 대로 실천하시는 일은 어느 식자 못지 않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어머님처럼만 생각하고 살아도 나라가 지금보단 훨씬 살만할덴데. 한 번의 외국여행으로 어머님은 애국자가 되어 돌아오셨다.

 


만리장성에서의 어머니 - 바로 뒤는 같이 가신 사촌 누님

 


상해의 윤봉길 의사 기념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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