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후에는 로마 중심지 관광이 이어졌다. 벤츠 투어를 하지 않겠다고 한 관광객은 우리 부부와 퇴직 교장 선생님 부부 네 명이었다. 네 사람 때문에 인솔자가 걸어서 안내를 하게 되니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시내는 부활절 미사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날을 잘 잡은 것인지, 잘못 잡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람 구경은 실컷 했다. 2층 버스에 타고 도심을 관광하는 사람이 많았다. 시내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복자로 추대하는 행사를 앞두고 요한 바오로 2세의 초상이 많이 걸려있었다. 나도 좋아하는 교황이다.
부활절 인파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 홍보
먼저 간 곳은 베네치아 광장이었다. 옛날 베네치아의 대사관이었고, 무솔리니의 집무실이기도 했던 건물이었다. 로마의 6개 주요도로가 이 광장으로 집중되어 교통이 혼잡하고, 이탈리아 국경일에 행사를 거행하는 장소라고도 한다. 베네치아 광장에 가장 돋보이는 건물은 당연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Vittorio Emanuele II) 기념관이다. 눈부시게 흰 이 건물은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를 기념하기 위한 건물이니 말하자면 이탈리아 통일 기념관이다. 지금부터 딱 100년 전인 1911년에 완성된 건물이라고 한다. 워낙 선명한 흰색의 건물이라 로마의 다른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로마 사람들에게는 ‘하얀 웨딩 케이크’라는 조롱섞인 별명을 얻을 정도로 사랑을 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불행히도 이곳의 사진은 잘라서 올릴 수밖에 없다.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사진은 절대 올리지 말라는 아내의 명령이 있어서.)
비토리오 에만엘레 2세 기념관, 오른편이 베네치아 대사관이었던 건물
중학교 때 세계사에서 여러 작은 나라들로 나뉘어 있었던 이탈리아의 통일(Risorgimento) 영웅은 ‘가리발디’라고 배운 기억이 난다. 그런데 왜 가리발디가 아니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인가? 이탈리아 통일은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읽어도 복잡하게 엮여 있어 그게 그 이야기인 것 같아 정리가 되지 않는다. 다만 나폴레옹의 유럽 원정이 이탈리아 민족의식을 자극해 통일에 불을 지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1815년 빈 회의 이후 시작된 통일 운동은 많은 좌절을 거치다가 가리발디가 선봉에 서면서 본격적으로 통일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가리발디는 사르데냐의 왕이었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에게 충성을 했으니 이탈리아인에게 통일 영웅은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인 것이다. 세월이 흘러 현대 이탈리아에는 도리어 상당수의 분리주의자가 있다. 부유한 북부는 가난한 남부로 자신들의 돈이 가는 것이 싫어서, 남부 시칠리아 쪽은 독특한 정체성으로 인해 그러하다고 한다. 150년의 세월은 하나의 민족으로 통합되기에는 부족한 시간인 모양이다. 누군가 그랬다고 한다. 민족의 형성은 망각의 역사라고. 통일신라 후기에 통일된지 250년이 지나서도 후백제, 후고구려란 이름으로 건국한 것을 보더라도 서로 적대시했던 기억이 잊어지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은 모양이다.
광장에서 비토리오 에마뉴엘레 2세 기념관을 바라보면서 오른쪽 건물은 1546년부터 200년 이상을 베네치아의 로마 주재 대사관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베네치아 광장의 이름도 이 건물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교황의 직할령이었던 로마가 이탈리아에 편입된 것이 1870년경이니 베네치아가 로마 교황청에 파견한 대사의 집무실이었던 모양이다. 베네치아도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거의 막바지까지 편입되지 않고 오스트리아의 영향 아래 있었으니 베네치아와 로마의 관계가 돈독했던 것은 당연한 일로 보인다. 이 건물은 파시즘 시대에는 무솔리니의 집무실로 사용된다. 이 건물의 발코니에서 무솔리니는 2차 세계대전에 이탈리아가 개입하는 연설을 했다고도 한다. 말하자면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던 대표적 건물이라 할 만하다. 무솔리니는 베네치아 광장에서 콜로세움까지 기존의 역사 건물들을 헐어버리고 넓은 대로를 냈다고 한다. 히틀러의 방문에 맞춰서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전체주의 권력자들은 소통하는 아담한 광장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주눅들게 하는 엄청나게 넓은 공간을 좋아하는 특징들을 가진 모양이다.
트레비 분수, 동전을 던지지는 않았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한 개 3유로 하는 아이스크림 세 개를 사서 인솔자와 나눠먹고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트레비 분수도 사람으로 넘쳐났다. 잠시 인증 샷을 날리고 인근의 식당으로 갔다. 점심을 배불리 먹었지만 이탈리아에 왔으니 피자를 먹어봐야 한다는 생각에 오직 피자를 먹기 위해서였다. 예상과 달리 우리 입맛에 낯설지 않았고 맛도 좋았다. 다음으로 간 곳은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 물론 외관만 둘러봤다. 원래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년)의 묘로 만들어졌는데 계속 용도가 바뀌다가 후에는 유사시 교황이 피신하는 요새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성에서 바티칸까지 비밀통로가 있다고도 한다.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도 나오는 성이다. 영화도 나왔다고 하는데 영화는 보지 못했다.
천사의 성
천사의 성 인근에서 본 걸인, 바구니 안에 든 사진은 테레사 수녀였던 것 같다.
천사의 성에서 나와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했다.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고 믿어지는 자리에 세워진 성당이라서 성 베드로 성당이라고 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의 건물은 1615년에 거의 200년에 걸친 공사 끝에 세워졌다. 성당 내부에 들어가면 규모와 디자인이 사람을 압도한다. 이탈리아에 온 이유가 이 성당에 들어가 보기 위해서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다. 미켈란젤로가 설계를 마무리했다고 전해지는 돔은 감탄을 자아낸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어떤 사진이나 설명으로도 현장의 느낌을 전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TV에서 교황이 나와 축복하는 모습을 볼 때의 그 발코니
미켈란젤로가 그전 설계를 참고, 변경해 설계했다는 돔
성당 출입문 근처에서 본 열쇠.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태복음16장19 절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는 스위스 근위병 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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