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서유럽 관광기(3) - 피렌체

안동에 사노라면 2011. 5. 10. 17:23

 다음 행선지는 피렌체다. 피렌체에서 국비 유학생으로 공부한 어느 고등학교 후배를 만난 이후로 피렌체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중학교 시절(자연계열이라 고등학교에서는 세계사를 배우지 못했다.) 메디치 가문이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다는 한 줄의 교과서 기록이 얼마나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주워들었을 뿐이다. 그래, 스쳐지나가는 관광일 뿐이지만 역사의 현장을 한번 보자.


로마에서 피렌체까지는 끝없는 구릉과 야산이 이어진다. 대부분의 마을은 언덕 위에 위치한다. 겨울에 강우량이 많고 여름에는 건조한 이탈리아 남부는 산 위가 사람이 살기에 좋다고 한다. 고지대에서는 물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물이 나는 다른 고지대에서 수로를 연결해 물을 공급받는 방식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특정한 기술이 발달한 배경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자연환경이 있는 모양이다. 높은 산 대신 구릉이 많은 땅과 기후가 건조한 여름이 그들로 하여금 포도와 올리브 위주의 농업을 발전시키게 만들고, 수질이 좋지 않아 이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는 생활방식을 발전시킨 것이겠지. 높은 산 대신 구릉으로 이어지는 지형이 부러웠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본 피렌체, 오른쪽 돔이 피렌체의 두오모인 성모 마리아 성당


미켈란젤로 광장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윗상(모조품)의 뒤태

 

먼저 피렌체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올라갔다. 광장에 있는 다윗상의 뒷태가 멋지다는 가이드의 말에 아내는 다윗상으로 가서 열심히 앞과 뒤를 찍었다. 잠시 피렌체 시내를 감상하다가 인증 샷을 날리고는 내려왔다. 이어서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영화(아내가 다운받아 줬는데도 난 보지 않았다.)로 유명해진 성모 마리아 성당을 관광했다. 가이드는 영화 덕분에 성당 종탑까지 가려는 사람이 많은데,  올라가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준다. 일행은 성당 주변을 서성거리며 외관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엄청나게 큰 규모와 예술적 감각이 과거 이 도시가 얼마나 융성했던 곳인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당시 기술로 성당에 돔을 올리는 것이 큰 난관이었는데 금세공사였던 브루넬레스키라는 사람의 설계로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성모 마리아 성당 세례소, 오른쪽 아래가 천국의 문

(성경의 10 장면을 금세공한 작품인데 미케란젤로가 나중에 천국의 문으로 명명) 

 

점심은 스파게티 로 먹었는데 한국에서 먹는 맛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 단체 관광 전용 식당인 것으로 봐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요리한 모양이었다. 이어서 단테가 생활하던 집으로 가서 인증 샷을 날렸다. 단테는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작품을 써서 현대의 이탈리아어가 성립하는데 기여한 바가 있다고 한다. 피렌체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단테, 마키아벨리 등 유명한 사람들이 활동하던 도시인데 단테의 무덤은 피렌체에 없다고 한다. 그는 정쟁에 휘말려 ‘라벤나’라는 다른 도시로 망명을 떠났고 그곳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이어서 시뇨리아 광장으로 이동했다. 시뇨리아 광장은 피렌체의 역사가 녹아있는 광장이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코시모 1세의 동상인데 메디치 가문의 일원으로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토스카나 대공국을 건설한 실질적 군주였다. 메디치 가문이 경제적으로만 강했던 것으로 알았는데 정치인도 배출하고, 교황도 배출했다고 한다. 이어서 가이드는 우리 일행이 있는 곳이 과거 어느 인물이 화형당한 장소라고 알려준다. 도미니크 수도회 수도사로 종교 개혁자였던 지를라모 사보나롤라가 화형에 처해진 곳이다. 그는 피렌체 시민에게 청빈하게 살 것을 설교하면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메디치 가문의 군주를 몰아내고 신정 정치를 펼치기도 했지만 교황 알렉산더 6세에게 파문을 당하였고 이단이라는 이유로 이곳에서 화형을 당했다고 한다. 그의 교회 개혁은 나중에 루터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코시모 1세 동상

 

지를라모 사보나롤라가 화형당한 장소

 

베키오 궁전은 지금도 시청사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건물 입구에는 두 개의 조각상이 있는데 하나는 미켈란젤로의 다윗상, 하나는 반디넬리의 카쿠스를 죽이는 헤라클레스 조각이다. 피렌체의를 대표하는 두 조각가의 작품이기도 하고, 서구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두 기둥에 서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들 조각상 외에도 각각의 사연이 많은 조각상들이 시청 앞에 진열되어 있는데 혹 다시 가게 된다면 그 사연들을 미리 공부하고 가서 또다른 감회에 젖어보리라. 피렌체의 외교관이기도 했던 마키아벨리가 이 건물에서 관료로 일하며 군주론을 썼다. 시청사 옆 트인 건물에 있는 조각상들도 인상적이었다.

 

시청사 앞의 두 조각상

 

 

넵툰상, 원래 다윗상 자리에 있다가 이쪽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그래서 다윗을 보고 있다나.

 

패키지 관광답게 쇼핑을 갔다. 피렌체 특산품인 가죽 제품을 파는 가게였는데 당연히 단체 관광객을 대상 하는 가게다. 달라진 점은 한국인 관광객은 아래층의 저가품 매장에, 중국인 관광객은 위층의 고가품 매장에 주로 있다는 점이었다. 매장 직원도 아래층은 한국어, 위층은 중국어로 판매하고 있었다. 물론 우리 부부는 구경만 하고 나왔다. 거리에 있는 창문들은 대부분 나무로 가려 햇빛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햇빛이 많은 동네이다보니 집 안은 조금 어둡게 해서 안정감을 느끼도록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