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영화 <남한산성> 감상 후기

안동에 사노라면 2017. 10. 15. 17:39

1. 병자호란

오전에 조조할인을 받아 영화 <남한산성>을 봤다. 영화의 완성도에 관한 언급은 내 영역이 아니다. 이 영화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시사성에 있을 것이다. 전통 강국인 명나라와 떠오르는 강국 청나라 사이에 끼인 조선의 모습에서, 패권 국가 미국과 떠오르는 강대국 중국 사이에 끼인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물론 당시의 명나라가 지금의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고, 당시의 청나라와 오늘날의 중국과 다르다. 미국의 패권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그래도 이 영화를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 효과는 있을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당시를 돌이켜보는 데는 한명기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추천하고 싶다. 병자호란 당시 여성이 겪은 2중의 수난에 관심이 있다면 유하령의 <화냥년>을 추천한다.

 

2. 청음 김상헌

영화와 달리 김상헌은 자결하지 않았다. 그가 후일 심양으로 끌려가면서 지은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라는 시조는 유명하다. 심양의 감옥에서 최명길과 화해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귀국한 후 고향인 안동의 소산리(고속도로 서안동 IC에서 빠져나와 하회마을을 향해 가다가 풍산읍을 지나면 오른쪽에 처음 나오는 마을이다.)에서 청원루(淸遠樓)라는 정자를 짓고 손자들을 가르쳤다. 청원루라는 정자의 이름이 청나라를 멀리 한다는 의미라고 하니 뼈에 사무친 모양이다. 그의 호 청음(淸陰)에도 그런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가 가르친 손자들은 후일 안동김씨 세도정치로 유명한 안동김씨 장동파의 원조가 된다. 노론이었던 그는 남인-영남학파가 주류인 안동의 유림들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했다. 안동김씨 장동파가 세도정치로 힘을 쓸 때 안동에 김상헌의 서원을 지으려고 했지만 안동 유림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안동에 서원을 짓지 못했다. 10년 전 김상헌의 고향 소산리를 소재로 <남산산성 그 후 김상헌 따라가기>라는 글을 한 편 쓴 일이 있다. http://blog.daum.net/cordblood/11059475

  

3. 홍타이지와 인조, 위상의 역전

영화에서 칸으로 불리는 사람은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다. 청나라 황실 족보에 따르면 그는 맹특목(孟特穆)7대손이다. 유명한 추장을 조상으로 설정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청나라 황실 족보를 모두 믿을 수는 없지만, 홍타이지의 조상이 맹특목 부족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은 있다. 맹특목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오타리 부족의 맹가첩목아(猛哥帖木兒). 만주어로 멍거 테무르, 몽골어로는 몽케 테무르를 음차한 말이다. 멍거 혹은 몽케는 영원하다는 의미, 테무르는 쇠라는 의미다. 그는 오타리(鰲朵里, 알타리斡朶里, 오도리斡朶里=吾都里) 부족의 추장이었다. 이 부족은 태종 때인 1,400년대 초, 조선의 동북 지역에 거주하면서 조선으로부터 책봉을 받아 복속하기도 하였고, 조선을 침입하기도 하였다. 어찌되었던 조선과는 상하관계였다. 그리고 230년쯤이 지나서 맹가특목아의 7대손으로 알려진 홍타이지는 태종의 9대손인 인조로부터 군신의 예로 항복을 받았다.

 

* 한국고전번역원의 최두헌이 쓴, 최명길의 아들 최후량의 이야기가 읽을 만한 것 같아서 소개한다. 

 https://mail.daum.net/#INBOX/Y000000000Ez6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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