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블로그를 생각하다

안동에 사노라면 2005. 6. 3. 18:36

  최근 내가 가장 자주 방문해 온 블로그 한 곳이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글 하나가, 사진 한 장이 온 천지를 떠돌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댓글 대상이 되고, 한번 대상이 되면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을 생각하면 인터넷에 글이나 사진을 올린다는 것이 무척 신경 쓰이는 일일 것이다. 더군다나 심한 욕과 인신공격을 당할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더더욱 조심스럽다. 한번쯤 이런 일을 당하고 나면 아마도 인터넷에 무언가를 올린다는 생각은 사라질 듯하다.

 

  그 블로그의 비공개 전환은 내게 '나는 왜 블로그를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네티즌이라는 다중의 언어 폭력에 노출될 수도 있음을 감내하면서까지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글을 올리는 데에는 내 속에 어떤 동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naver 용어사전에서 'blog'란 말을 검색해보니 '웹(web)과 항해 일지를 뜻하는 로그(log)의 합성어로, 웹 사이트 주인인 블로거(blogger)가 발행인이자 편집국장이며 기자이기도 한 인터넷상의 일인 언론사. 게시판 형식의 사이트에 자신의 일상적인 일기에서부터 사회적인 이슈에까지 개인이 자유롭게 글과 사진, 동영상 등을 올려 디지털 논객, 온라인 저널리스트로서 미디어 커뮤니티를 이끌어 간다.'라고 되어 있다.

 

  Daum 블로그를 1인 언론사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 블로그의 시작은 칼럼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시작한 동기는 늙어서 인생을 정리할 즈음에 '평범하게 산 사람의 자서전'을 한번 써 보고 싶었다. 자서전이라면 유명 인사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난 누구나 자서전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자서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야 소수이겠지만 쓰는 사람 자신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떠날 수 있어 좋고, 후세에 그 자서전을 쓴 사람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되어서 좋다. 실제 노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구술 받아 자서전을 써 주는 사업을 해 볼까 생각도 해봤다.

 

  처음 출발이 자서전 준비를 위해서였기 때문에 초반엔 내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오면 오고 말면 말고'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의견에 답을 다는 일도 거의 없었고, 남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일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내 글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싫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쓸 때도 방문객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맞춤법, 문맥의 일관성, 구성 등에도 조금씩 신경을 쓰게 되었다. 자주 방문하는 분들의 칼럼, 블로그에는 답방을 하고, 교감게시판이나 의견에 답을 다는 예의도 조금씩 갖춰나가게 되었다.

 

  점차적으로 1인 언론사라는 블로그의 정의 접근해 가게 된 것이다.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방문하는 횟수도 늘었다. 처음엔 읽고 나오다가 요즘엔 의견을 다는 성의를 조금씩 보이고 있다. 그래서 '쌍방향 communication이 가능한 1인 언론사'에 접근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방문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아주 멋진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이것이 요즘 내게 블로그가 취미생활이 된 이유다. 내가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함에 비해 그런 삶을 살아가는 분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기도 하고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내 블로그 역시 그런 역할을 하게 만들고 싶다(중년에 이 무슨 주책?).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글이 생긴다. 내 블로그의 편집인인 나는 이런 글들의 등급을 나름대로 조정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하기는 뭣하지만 관계 형성이 된(통하기) 분들에게는 공개해도 될 것 같은 글은 '통하는 사람'으로 제한하여 올리기도 하고, 그렇게 올리기도 부담스럽거나 통하는 사람 중 일부(예를 들면 같은 직장 사람)라도 읽으면 상처를 받거나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글, 이념논쟁의 소지가 있는 글은 비공개로 올리기도 한다.

 

  자주 내 블로그를 방문하지만 '통하기'가 되어 있지 않은 분도 있다. 상업목적으로 내게 통하기를 신청하는 분은 대개 내가 승인을 거부한다. 그런데 간혹 나는 '통하기'란 관계형성 의사가 있어 승인을 요청했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승인을 해 주지 않는 분도 있다(현재는 딱 한 분 있다). 그렇다고 왜 승인 해주지 않느냐고 따질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분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글이 있긴 한데 공개하기는 뭣한 글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간혹 모험을 하기도 한다. 그런 분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날에 몇 시간 공개하고 그 분이 다녀간 후 닫는 방식이다(^-^). 쌍방향 communication을 위한 블로그 운영은 이래서 상당히 어렵고 정성을 필요로 한다.   

 

  간혹 내 블로그를 방문하는 분의 블로그를 답방했는데 '통하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면 당황하게 된다. 그 분의 블로그를 보지도 못하고 통하기 신청을 할 수도 없는 일. 단방향 communication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며칠 전 라디오를 통해 reset 증후군이란 표현을 듣게 되었다. reset 증후군의 정의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컴퓨터가 말을 듣지 않을 때 얼른 리셋(Reset)버튼을 누르면 시스템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핑계로 지금까지 벌여놓은 일이나 인간관계 등을 쉽게 다시 시작하려는 현상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블로그를 하다 블로그 자체가 부담이 되거나 자신의 일부 글로 인해 심하게 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reset 하려는 욕구가 생길 것 같다. reset 하더라도 cyber 상의 일이므로 익명성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사회적으로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cyber 상에서도 개인 윤리가 일반화되어 책임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싶다. 블로그를 폐쇄하더라도 사유와 일정을 알리고 절차에 따르는 문화가 아쉽다.

 

  나 역시 블로그를 하다보면 관계 형성의 폭이 넓어지면서 지속적인 관계가 부담스러운 때가 있다. 이럴 땐 계산을 퉁겨서 관계를 단절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전체를 reset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reset 하려는 욕구. 실제로 그런 일을 해봤다. 그런데 그 뒤 그 분이 내 블로그를 방문하는 일이 있으면 상당히 미안해진다. '통하기' 승인을 짜게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관계를 단절하는 일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     


  다른 포털에도 블로그가 두 개 더 있다. 그러나 이들 블로그는 운영 목적이 다르다. 블로그에서는 메모리를 무한대로 준다는 점에 착안하여 나와 내 가족의 중요 사진을 보관하는 장소로 이들 블로그를 사용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진은 비공개로 되어 있다. 내 컴퓨터에 보관하다가 하드가 날아가면 대책이 없고, 컴이 구닥다리라 CD wrighter가 없으니 CD에 구워두기도 힘들어 시작한 일이다. 공간 제약을 받지 않고 필요할 때 볼 수도 있고 활용할 수도 있어 좋다. 비공개로 한 사진들은 해킹 당하지 않고서야 공개될 일이 없으니 큰 걱정은 않는다. 공개된다 해도 뭐 부끄러울 것도 없고.

 

  초반에 이들 사진 보관 블로그를 공개했다가 비공개로 바꾸었는데 아무 예고도 없이 그렇게 했다. 간혹 방문하는 분도 있었는데... 나의 reset 증후군 병력이다. 두 곳 중 한 곳은 여행사진만 공개하고 있는데 자주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절차에 따라 비공개로 하는 것이 옳을지 간혹이라도 관리하면서 유지해야 할 지를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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