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이발소 그림

안동에 사노라면 2005. 6. 26. 12:54


 

 

집 거실에 걸어둔, 몽골 풍경화로 아이들이 이발소 그림이라고 하는 그림이다. 우리집에서 유일한 유화 그림으로 산 것은 아니고 2002년 몽골 국립혈액센터 갔을 때 그 곳 혈액센터에서 선물로 받은 그림이다.

 

미술적 가치를 떠나 몽골 기준으로는 아주 좋은 그림이다. 몽골 그림에는 다섯 가지 기본 요소(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산, 물, 게르, 말, 양이 들어가는 것 같다.)가 들어가야 좋은 그림이라는데 이 그림에는 그 다섯 가지가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받아 올 때 사실 고민이 되었다. 그림을 표구가 된 상태로 받았는데 외국에서 그림을 사 오는 사람들 말이 그림을 표구가 된 상태로 가지고 들어오면 세관에서 압수가 된다는 것이다. 멀쩡한 표구를 뜯자니 아깝고, 국내에 들어와 다시 표구하려면 표구값이 더 들지도 모른다는 못된 생각도 들었다. 표구를 뜯어내었다면 선물 준 사람들 기분도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생각 끝에 표구가 된 채로 그냥 가지고 들어오기로 했다. 고가 미술품 산 것도 아니면서 지레 걱정할 필요가 뭐 있나? 비행기 안에서부터 승무원들에게 특별(?) 보관을 부탁하는 등 힘들게 인천 공항에 내렸다. 공항에서 나올 때 자진해서 세관 신고대로 갔다.

 

"그것 뭐예요?"

"그림입나다."

세관원의 얼굴에 잠시 표정의 변화가 온다.

"비싼 것 아닙니까?"

- '비싼 것이면 내가 미쳤다고 표구 된 채로 세관 신고대 오겠냐?' -

- '그렇지만 공손하게' -

"몽골에서 선물 받은 것인데 보여 뜯어볼까요?"

"아니, 됐어요. 그냥 가세요."

 

이 아저씨 나의 선하게 생긴 얼굴을 믿고 그리하진 않았을 것이고 몽골에서 왔다는 말에 통과시켜 주었을 것이다. 경험적으로 몽골에서 비싼 것을 사 온 사람을 보지 못했겠지. 사실 2001년도 몽골 여행 다녀올 때도 규정 위반이 있었다. 귀국 선물이 마땅찮아 '칭기스칸 보드카' 여섯 병을 사 왔다. 한 병에 5달러 주었지만 술은 원래 한 병밖에 가져오지 못한다. 그 때도 세관 자진 신고대로 갔다.

 

"술을 여섯 병 사 가지고 왔는데요. 가격은 한 병에 5달러 짜리입니다. 원하시면 영수증 제시할 수 있습니다."

- '영수증 있는데 세금 매겨 봐야 얼마나 매기겠어?' -

"다음부턴 한 병씩만 사 오세요."  무사 통과 

 

이런 과정을 거쳐 국내에 반입된 그림을 다시 대구까지 가져가는 과정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 가족들은 대구에 있고 나 혼자 서울에 있을 때인데 고시원 한 칸을 얻어 생활할 때였으므로 서울에 둘 곳도 없었다.

 

집에 이 그림을 붙이고 나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가관이다. 하나같이 옛날 동네 이발소에서 보던 그림이 연상된다는 것이다. 40대 이상인 사람들은 동네 이발소 그림을 기억할 것이다. 대개 강가에 오두막이 있고, 그 집 옆으로는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그림. 그리고 푸쉬킨의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되는 '삶'이라는 시가 그 그림 속에 있거나 다른 액자에 담겨 있는. 이런 것이 이발소 풍경이었다.

 

그 뒤로는 우리집 아이들은 이 그림을 '이발소 그림'이라고 부른다. 좌우지간 이 놈들은 애비가 가져온 물건은 무조건 싸구려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발소 그림이면 어때. 준 사람들의 정성이 있어 좋고, 몽골의 자연을 생각할 수 있어 좋고, 옛날 이발소를 생각나게 해 주어 또 좋은데. 오늘도 이 그림은 우리집 거실의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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