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마치고 나올 때 C씨가 한 마디 한다.
"나도 춤춘다."
(뒤의 dance라는 말은 알아들었는데 앞의 말을 정확히 듣지 못한 상태에서 영어 교사를
하는 C씨의 아내가 아마추어 팀에서 전통 춤을 춘다는 말로 잘못 듣고 넘겨짚어서.)
"네 아내가 춤을
춘다고?"
"아니 나도 춤춘다고."
이제 알아들었다. 이 친구 비도 오고 하니까 좀 철학적으로 되는 모양이다. 이럴 땐 장단을 맞춰야 한다.
"맞아. 삶은 춤이지. 우리나라에서도 삶을 춤춘다고 표현하기도 해."
이 친구 아이들에 대한 의무를 다 하고 나면 히말라야에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힌두교도들은 삶을 세 시기로 나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남에 의해 성장하는 첫 번째 시기, 자식을 키우고 사회를 위해 일하는 타인을 위한 시기, 수행에 들어가는 자신만의 시기. 이 친구도 그런 사고에 따라 은퇴 후에는 히말라야에 들어갈 생각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을 '요기'라고 한다. 요가란 말도 여기서 생긴 것이 아닐까?
이 친구 평소 행동을 보면 빈소리는 아닐 것 같다. 힌두교적 관점이 상당히 확실하다. 그렇다고 카스트가 브라만은 아니다. 크샤트리아 계급이다. 네팔어로는 체트리. 학교까지 태워주면서 가족 이야기, 춤 이야기를 했다. 인생은 태어나는 춤에서 시작해 죽음이라는 춤을 추고 막을 내리는 것이라고.
중요한 것 한 가지를 또 배웠다. 이 친구 이야기하다가 이런 대화도 있었다.
"신은 한 분이다."
"야, 뭔 소리야. 힌두교는 다신교잖아."
"아니야. 신은 한
분인데 힌두교의 많은 신의 이름은 그 신의 다양한 표현일 뿐이야. 신은 내 안에도 있어. 여기저기 신을 찾는(아마도 절 이야기인 듯) 한국
친구에게 (자신을 가리키며) '신은 여기에 있다.'라고 한 일도 있어."
지금까지 힌두교는 다신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책에서 읽어본 신의 이름만 해도 부지기수니까. 그런데 힌두교를 잘못 이해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마스테'라는 인사가 생긴 모양이다. 그 인사의 뜻은 내가 알기로는 '당신 안에 있는 신성을 본다.'라는 의미니까. 그래서 잘 이해한 척 하기 위해 한 마디 했다.
"그래서 '나마스테'라고 인사하는구나. 그 뜻이 '당신 속의 신성을 봅니다.'란 뜻이잖아."
"맞아, 그런데
그 인사는 공손한 인사로 자기보다 윗사람에게 하는 거야."
쩝, 이 친구들 우리집에 왔을 때 아내에게 '나마스테'라고 인사하라고 시켰는데 엄청 기분 좋았겠군. 짧은 영어로 종교철학적 이야기, 문화의 겉모습은 달라도 속은 같다는 이야기 등을 하다 보니 학교에 도착했다. 커피 한 잔 하면서 문화적 차이에 관한 이야기 좀 더하고 헤어졌다. 오늘 대화 중에 망각의 춤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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