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하룻밤에 음악회 두번(II)

안동에 사노라면 2005. 10. 2. 22:48

산사음악회

 

  낚시를 당겨보니 월척이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다. 친구는 친한 후배인 고선생을 안동으로 불렀다. 몇 차례 자리를 같이 한 일이 있어 나도 잘 아는 사람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현미경에 눈박으며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공통점도 있다. 서울이 고향인 친구는 제주도에서 날아오고, 제주도가 고향인 친구의 후배는 서울서 기차로 내려온단다.

 

  금요일부터 날씨가 나를 걱정시킨다. 이 시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가을비가 끈덕지게 내리고 있었다. 탈춤 축제보단 당장 토요일 저녁 산사음악회가 신경이 쓰인다. 사람 불러놓고 산사음악회 열리지 않는다고 하면 내 입장도 상당히 문제다. 다행히 저녁이 되면서 비는 잦아들고 있었다. 

 

  한 시간의 시간차로 두 사람이 도착했다. 다섯 시쯤 해서 바로 청량사로 갔다. 가는 길에 음악회 열리는지 확인도 하고. 도착하니 경찰이 다리 앞에서 주차를 통제하고 있었다. 입구의 주차장도 만원이라 도로변 공간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니 버스를 동원해서 사람들을 등산로 입구까지 실어 나른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 같다. 공원 내의 주차로 인한 혼잡도 피하고 사람들의 불편도 덜어주고. 버스가 돈을 받을지 받지 않을지 신경 쓰고 있는 쪼잔한 내 모습이 지현 스님의 배려와 비교된다.

 

아래 6장의 사진은 친구의 폰카로 찍은 청량사 입구 모습들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가니 가로등을 대신한 등불이 산길을 밝히고 있다. 다양한 색의 조명이 절을 비추고 있었다. 안내하는 분들이 떡과 컵에 담긴 초를 돌리고 있었다. 음악회 준비에도 많은 돈이 들어갔을 터인데, 차량, 떡, 양초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미 명당 자리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어 우리는 엉덩이가 불안정한 돌에 겨우 자리를 마련했다. 나중에 온 사람들은 그나마도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준비한 5천 개의 떡이 모두 나가고도 뒤에 온 사람들은 받지 못했다고 하니 7천 명쯤은 되는 모양이다. 수녀님들도 초대받아 단체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음악회는 어산작법학교의 범패, 김민성, 장관석, 강금령씨의 성악, 불교 대중음악 가수 김희형, 임지훈, 김동환, 정경희, 윤수일씨의 대중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난 음악 자체보다 산사음악회의 분위기를 보기 위해 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비는 전화위복이 된 듯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청량사 전체가 안개 속에 잠겨들었다. 안개 속을 비추는 조명이 무대를 더욱 환상적으로 만들어주었고, 가수들의 모습 또한 안개에 가려져 노래에 신비감이 실리도록 해 주었다.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실력으논 이런 환상적인 장면들을 살려내지 못할 터이니 차라리 찍지 않는 것이 나을 테니까.

 

친구의 폰카로 찍은 음악회 장면 2장

 

  무대 - 왼쪽이 탑, 오른쪽이 소나무

 

  범종각 주위의 촛불을 든 사람들

 

  비는 화재 걱정도 없애주었다. 수천 개의 촛불을 종이컵에 담아 누누어 주었는데 마른 날 같으면 웬만한 간으론 이런 생각을 하기 힘들 것이다. 음악회 끝날 때쯤 산사에 모인 사람들이 흔드는 촛불 또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지막 가수 윤수일씨가 등장할 때 먼저 일어나 나왔다. 가파른 길에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내려가면 대형 사고의 위험이 있을 것 같았는데 진행요원들이 내려가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이미 입구 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래도 위험요소는 많아 보였다.

 

행복한집 음악회

 

  옥동에 도착하니 이미 10시 반이 넘었다. 친구와 홍어를 먹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로 행복한집으로 갔다. 토요일은 음악의 날이었다. 그 집엔 어느 독립운동가의 문집을 준비하던 팀이 모여서 통기타로 70년대 풍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50~60대로 보이는 남자 7~8명과 40대로 보이는 여자 3명이 노래를 부르는데 이게 우리 일행이 진짜 좋아하는 분위기다. 친구와 나는 야외에서 술먹다가 고성방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홍어집에서 작은 소리지만 기타치며 노래하는 이런 분위긴 정말 술맛이 당기게 한다.

 

  사장님께 배고프다고 우선 아무거나 좀 달라고 했더니 홍어를 준비하기 전에 아들 면회갈 때 준비했던 음식이라면 김밥, 닭고기, 고구마 등을 내어준다. 막걸리와 공짜 음식, 나중엔 삼합을 안주삼아 마시고 있노라니 옆에선 70년대 통기타 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분위기의 노래, 칠갑산 분위기의 노래 등 다양한 장르로 우리의 술맛을 돋구어준다.

 

  우리들을 의식한 옆의 팀은 노래부르는 와중에 계속 미안하다고 인사를 한다. 우린 아주 좋다고 하는데도 계속 신경을 쓴다. 우리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난감하다. 내가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면 어떻겠냐고 하니 친구는 아직은 따라 부르지 말자고 한다. 자신의 경험으로 봐서 따라 부르다보면 합석하게 되고 합석하게 되면 간혹 논쟁 끝에 뒷끝이 좋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이유에서. 알 만하다.

 

  급기야 통기타를 잡은 분이 우리 자리로 왔다. 우리도 한 곡 하라는 이야기. 이런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다. 진주난봉가를 완창했다. 난 술이 취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진주난봉가를 부르는 버릇이 있는데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기 때문에 굿거리장단과 트롯트가 제멋대로 섞인 나 자신만의 스타일로 부른다. 국악을 아는 분들은 장단이 좀 이상하지만 가사를 다 아는 사실은 기특하다고 생각하는데 국악을 모르는 분들, 특히 남편의 행실에 문제가 있는 40대 아줌마들은 '뿅' 간다.

 

  한 곡 덕분에 옆자리에 불려가 한 잔 얻어먹고 한참 지나니 옆팀이 나갔다. 이젠 음악회도 끝났으니 이 친구와의 논쟁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 친구와 술 마실 땐 어느 정도 취하면 어떤 주제로 논쟁을 벌이는 것이 상례화되어 있다. 대개 다음날에는 어떤 논쟁을 벌였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마도 서울과 지방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 것 같은데 내가 "문화식민주의자"라는 있지도 않은 신조어로 친구를 공격하며 논쟁을 벌인 것 같다.

 

  원래 12시쯤 문을 닫는 집이라 1시는 넘었겠다 싶어 일어나 시계를 보니 시간은 세시 반이 넘었다. 아이고 미안해라. 나온 다음에는 포장마차에서 한 잔 더 하려고 갔는데 고등어 안주가 나오기를 기다리다 두 사람이 잠드는 바람에 고등어 몇 점 먹지도 못하고 서둘러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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