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임청각 1 - 그 주변

안동에 사노라면 2006. 2. 20. 00:30

임청각에 관한 한 유교문화권 역사체험 홈페이지(http://tour.koreastudy.or.kr)와 낮달님의 블로그(http://blog.daum.net/natdal)가 가장 추천할 만하다. 입춘첩에 관한 관심이 있거나 블로그 주인에게 관심을 표해야 할 경우에만 이 곳에서 계속 읽으시길...

 

임청각은 안동시내에서 안동댐을 가다 보조댐 조금 못 가서 왼쪽 중앙선 철로 아래로 난 길로 들어간다. 들어가면 왼쪽에는 신세동 7층 전탑이 있고 오른쪽에는 고성 이씨 탑동파 종택이 있다. 임청각은 신세동 전탑을 따라 왼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있다.

 

 담장 밖에서 본 임청각

 

신세동 7층 전탑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전탑으로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높이 17m, 기단부 7.5m. 현재 법흥동에 있는데 '신세동’은 1962년 국보 지정 당시의 오류라고 한다. 과거에 임청각이 있던 이 일대는 법흥사(法興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조선조에 와서 불교가 탄압받으면서 양반가의 땅으로 바뀐 모양이다. 이 탑 상륜부의 금동장식은 임청각을 창건한 이명(李?)의 아들 이고(李股, 淸風郡守 역임)가 철거해 그것을 녹여 객사(客舍)에 사용하는 집기를 만드는데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법흥사 절은 조선시대 양반에 의해 쇠퇴한 것일 게다. 그 후 1919년 개수했다는데 기단과 1층을 시멘트로 발라버렸다. 그 방법밖에 없었던 것일까?

 

신세동 7층 전탑 - 기단과 1층 몸체 사이를 시멘트로 발라버렸다.

방음막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으로 중앙선이 지난다.

 

7층 전탑과 임청각 바로 앞에는 중앙선이 지나간다. 중앙선이 개설되면서 임청각도 잘려나가고, 신세동 전탑도 기차 통행으로 인한 진동 때문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철도 부설을 하면서 양반들의 반대로 인해 노선이 바뀐 경우도 있다는데 중앙선은 안동 지역의 유력한 99간 양반집을 관통하는 노선을 지나갔을까? 혹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선생 대한 보복 성격은 없었을까?

 

임청각은 광복회 안동지회 사무실이기도 하다.

 

임청각 바로 앞에도 중앙선이 지난다.

사실은 임청각 가운데로 중앙선이 관통한 것이다.

 

  임청각 대문 앞에 있던 회나무. 이젠 중앙선으로 인해 임청각과 나뉜 상태로 있다.  


탑 오른쪽 건물은 중요민속자료 제185호로 지정된 ‘고성이씨 탑동파(塔洞派) 종택’이다. 이 건물을 임청각으로 착각하면 곤란다. 탑 주변에선 임청각이 보이지 않으므로 처음 오는 사람은 주의가 요한다. 종택 뒷편을 따라 올라가면 풍광이 빼어난 곳에 현 소유자 이찬형씨의 7대조인 진사 이종주공이 1775년에 건립한 북정(北亭)이 자리잡고 있다는데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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