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대소산 봉수대 그리고 영덕 대게

안동에 사노라면 2006. 3. 27. 00:57

25일 직장의 같은 직종의 사람들이 workshop과 친목을 겸한 모임을 가졌다. 장소는 영덕 축산항 근처의 우리 직장 수련원. 수련원은 경정리라는 대게 원조마을에 있는데 바로 바닷가에 있어서 방에 앉아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평소 같은 직종이 모이는 회식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대부분 골프 이야기, 최근에 누가 무슨 차를 샀다는 이야기, 주식 이야기 등이 대화의 소재를 이루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은 참석해도 대화에 끼기도 힘들다. 그래도 이번 행사는 공식 행사이기 때문에 참석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난 학회 때문에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학회를 간 사이에 참석 여부를 조사했고 내가 학회 가고 없으니 '학회'라고 표시한 모양인데 그게 와전된 모양이다. 앞으론 회식 자리도 가능하면 참석해야지 잘못하다간 짤리는 수가 있겠다.

 

명색이 공식적인 행사니 처음부터 먹고 놀 수는 없는 일이어서 우선 등산을 했다. 축산항이 배려다보이는 작은 산으로 봉수대까지는 30분이 조금 더 걸리는 정도다. 길도 좋아 초보자도 그리 힘들지 않게 올라갈 수 있다.

 

봉수대에 오르니 정말 천하 절경이다. 바다가 원래 푸르지만 이 일대의 바다를 특별히 '푸른바다'라고 부르는데 봉수대에서 보니 정말 왜 '푸른바다'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바다와 작은 산으로 나뉜 넓은 들의 지세도 상당하였다. 축산항도 한 폭의 그림같았고.

 

봉수대는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또 봉수대 바로 옆에는 KT 송수신탑이 있었는데 멀리서 보면 흉물이긴 하지만 의미를 두자면 과거와 현재의 통신 수단이 조화를 이루고 서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불행히도 급히 출발하느라 카메라를 챙기지 못한 관계로 사진은 동료 선생님의 사진을 빌려 올려야겠다.

 

 

 

 

   푸른바다, 축산항 입구

 

  왼쪽은 현미경으로 남의 살점 들여다 보는 재주늘 가진 동료.

  오른쪽은 남의 머리속을 들여다보는 재주를 가진 동료. 배경은 축산항. 

 

   축산 일대의 특이한 지세 - 과거 바다였던 곳이 들이 된 모양이다.

 

내려올 때 보니 봉수대 입구까지 차도가 만들어져 있다. 시간이 없는 사람은 차로 올라가 봐도 된다.

 

하산 후에는 두 조로 나눠 두 가지 주제의 workshop을 가지고 저녁 식사장으로 향하였다. 주 메뉴는 회와 대게 100마리. 회가 먼저 나오길래 대게는 언제 나오냐고 물으니 식사랑 같이 나온단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지금 당장 대게를 달라는 대선배님의 주장 덕분에 회를 다 먹을 때쯤 들어온 대게를 먹을 수 있었다. 그 시간 회를 먹으며 술기운이 오른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자리를 옮겨가며 소주잔을 권하고 있었지만 난 대게에 열중했다. 진정한 술꾼은 때를 가리는 법이다. 술잔 들고 왔다갔다 하다간 정작 중요한 대게는 얼마 먹지 못하게 되므로 이럴 땐 몸을 함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몸통의 맛을 모르는 초보자들에게 열심히 다리를 잘라준 후 그 사람들 다리에 열중하고 있을 때 재빨리 몸통으로 달려들었다. 물론 다리도 먹고. 몸통만 해서 서너 마리는 뜯었을 것이다. 

 

26일 돌아오는 버스에서 대선배님 한 분이 가족들을 위해 대게를 사야 한다며 강구항을 거쳐 가자고 한다. 살까말까 갈등하며 강구항에 들어가니 그 선배님 단골집이 있는지 망설임없이 한 가게로 들어간다. 나를 포함한 네 사람이 따라가고. 그 선배님은 대게에 대해 잘 아는 분으로 큰 놈보다 작은 놈이 맛이 있다고 작은 놈으로 고른다.  다른 사람은 5만원어치 샀지만 난 우리 식구가 먹기에는 너무 많은 것 같아 3만원어치만 샀다. 그러니 덤으로 죽은 큰 놈 한 마리도 끼워준다. 소라도 끼워주고. 양은 다른 분들의 5만원어치나 거의 비슷하다. 가게 주인은 습관적으로 계산하다 내 카드에 5만원을 긁어버려 2만원을 돌려받았다. 대게 한 박스에 돈 2만원까지 받아들고 나오니 좀 미안하기도 하다.

 

오후에 만날 C씨와 대구 친구와 나눠먹기 위해 두 마리 뺐는데도 우리 식구들 먹고도 남는다. 나중에 아내는 끼워준 큰 놈이 더 맛있다고 한다. 전문가의 입맛과 초보자의 입맛은 다른 모양이다.

 

여행갔다 식구들 위해 먹을 것도 살 줄 아는 것을 보면 나도 조금씩 철이 드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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