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고운사(孤雲寺) - 구름 외로운 절집

안동에 사노라면 2004. 5. 26. 23:07

구름

  사월초파일에 본 고운사(孤雲寺)의 외로운 구름

 

金口默坐本無說
雪山苦行無行蹟
心身不動如虛空
無量法門何增說

 

  고운사 무설전(無說殿)에 있는 주련이다. 안동에 온 후 처음 고운사를 방문하면서 발견한, 유일하게 수박 겉핥기 정도의 해석이 가능한 주련이어서 메모해 두었다

 

금구묵좌본무설 - 묵좌할 때엔 원래 말이 없는 법
설산고행무행적 - 눈덮인 산에서 수행해도 자취를 남기지 말고
심신부동여허공 - 심신을 움직이지 않기를 허공과 같이 하라.
무량법문하증설 - 가없는 법문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리요.

 

무설전

고운사 무설전의 모습

 

고운사는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영주 부석사나 안동의 봉정사가 이 고운사의 말사다. 본사라서 규모는 큰 편이지만 다행히 사람으로 북적대는 절은 아니다.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고, 원래 절의 이름은 고운사(高雲寺)였는데 신라말의 문장가 최치원이 여지, 여사라는 두 스님과 이 곳에 와서 가허루(駕虛樓)와 우화루(羽化樓)라는 두 누각을 건립하였는데 이 때부터 최치원의 호를 따라 고운사(孤雲寺)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어찌 되었거나 나는 절의 이름이 종교적 색채가 적고 시적인 '외로운 구름'이라는 뜻이어서 더욱 친근감이 간다.

 

고운사 입구에는 두 개의 주차장이 있다. 먼저 정문 앞에 주차장이 있고, 좀 더 올라가면 조계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일주문 앞에 주차장이 있다. 걷는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차로 일주문까지 가는 것은 고운사의 큰 맛 중 한 가지를 놓치는 어리석은 일이다. 정문에서 일주문까지의 숲길엔 아름드리 나무들이 있는데 이 나무들 중 곧게 자란 나무들은 별로 없고 대개는 휘어져 있고 굽어 있다. 마치 세속에서 삶의 질곡을 겪고 있는 중생들처럼. 누구나 자신의 삶을 닮은 나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길을 걷지 않고 차로 바로 일주문까지 가는 것은 이 나무들을 보면서 살아온 날들을 반추하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된다. 일주문을 넘기 전에 세속의 때를 털고 절집을 찾는 것이 예의. 

 

휘어진나무
  고운사 입구의 휘어진 나무들

 


그리고 길 

 

  고운사 숲길을 소재로 한 어느 시인의 시 한 수를 소개한다.

 

 

 

고운사

 

                                           김용주

 

일주문 앞 숲길에서 바람이

흔드는 정적 

길을 벗어난 꽃잎들이 숲으로 돌아가고

길은 훤히 비어 있다.

아직도 할말이 너무 많아

반짝이는 나뭇잎들

투명한 공기처럼

새들의 목청이 맑게 트여 있다.

다가갈수록 아득해지는 숲길

깊은 물 속처럼

일렁이는 빛살

숨이 멎고 심장 고동소리

천둥처럼 울리면

놀란 꽃잎들이 숲으로

새들처럼 날아가고 있다.

 

* 출   처 : 김용주 시인의 시집 '그림자'에서

              (시인의 허락을 받아 게재함)

  김용주 : <한국시>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목숨에게', '바다로 난 길', '느티나무 숲'

              전 경북대 의대 진단방사선과 교수

              현 안동병원 인터벤션 영상의학과장

 

일주문을 지나 절 입구에 들어서면 누각 하나를 보게 된다. 최치원이 지었다는 가허루(駕虛樓)와 우화루(羽化樓) 두 누각 중 가허루(駕虛樓). 지금은 가운루(駕雲樓)라 불린다. 가허루(駕虛樓)는 허공을 탄다는 뜻이고 가운루(駕雲樓)는 구름을 탄다는 뜻이니 신선이 노는 누각이란 의미리라. 이 누각은 그 기둥들이 계곡 가운데 서 있으니 이 누각에서 계곡의 물이 누각 아래로 흐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구름을 타고 나는 느낌이나 허공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것도 같다. 사실 최치원은 도교적 풍류를 즐기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니 최치원과 관계가 깊은 절이 사실인 것 같다.

 

가운루

  가운루(駕雲樓)

 

가운루를 지나면 전형적인 큰 사찰의 모습들이 나온다. 대웅전을 지나 왼편으로 돌아서면 또 무설전과 마찬가지로 수도하러 온 외부인을 위한 적묵당(寂默堂)이라는 건물이 나온다. 여기도 해서체로 된 주련이 있어 옮겨 본다(해석은 불교에 문외한이므로 자의적이다).

 

隱居復何求
無言道心長
默坐觀一法
劫外現消息

은거부(복)하구 - 숨어지내며 다시 무엇을 구하나

                         (은거하러 돌아와 무엇을 구하나)

무언도심장 - 말없는 가운데 도심은 깊어지고

묵좌관일법 - 말없이 앉아 법 하나만 관하니
겁외현소식 - 영겁의 밖에서 천지시운의 변화가 보이네

영겁의 밖에서 천지시운의 변화가 보인다, 이쯤 되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 아닐런지. 큰 사찰답게 범종각도 갖추고 있다. 범종을 두드려 지하만물을 깨우고, 법고를 쳐 지상의 축생들을 깨우고, 어판을 쳐 수중 생물들을 깨우며, 운판을 쳐 날짐승들을 깨우는 본래의 사물(四物)이 조상들의 삶 속에 스며들면서 징, 북, 장고, 꽹과리의 사물놀이로 된 것을 보면 불교의 역사와 영향력을 실감하게 된다. 

 


초파일의 고운사 연등

 


멀리서 본 연등

 

  구름 외로운 절에서 태어난 후 처음으로 사월초파일 절기행을 해 보았다. 

 

고운사를 가려면 먼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은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I.C.를 나와 의성-안동간 국도로 접어들고 국도를 만나면 의성, 대구방면으로 우회전해서 800미터 정도 가면 육교가 나오고 육교 다음에 도로표지판에 고운사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나와 굴다리를 지나면 고운사 8km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그 뒤로는 별 어려움이 없다. 안동을 거쳐 가는 사람들은 의성-안동간 국도를 찾아 중앙고속도로로 나가는 분기점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역시 위의 육교를 만날 수 있다. 의성의 공룡발자국이나, 탑리의 탑, 빙계계곡 등을 보고 오려면 의성에서 단촌을 거쳐서 가면 된다. 절 근처에 상가가 없는 것도 고운사 절구경의 매력 중 한 가지. 


절구경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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