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경주에 사람이 있었네

안동에 사노라면 2007. 2. 25. 06:39

그는 50대 초반의 남성이다.
교사다.
여행가다.
기독교 신앙인이며 합창단 단원이기도 하다.
블로거다.
그의 블로그엔 여행, 교육, 영화 이야기가 주로 올라온다.
가끔은 생활의 단상이 올라오기도 한다.    

 

  사람을 만나고 싶기도 했고 2층에 마련했다는 서재가 궁금하기도 했다. 독립적인 서재란 책을 읽건 아니건 간에 중년 남자들의 꿈이 아닌가. 경주역까지 마중을 나온 50대 아저씨는 예상보다 미남이었다. 여행기에서 간혹 본 얼굴보다는 희고 단정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역에서 15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집은 소공원을 앞에 둔 개인주택으로 대문은 열려있었다.

 

  2층 서재를 들어서기 전 만난 20여 분의 분재들. 철사로 비튼 분재가 아닌 자연스레 키운 작은 나무들이었다. 분재에 대한 선입관이 바뀐다. 큰 나무 옆에 싹을 틔워 앞으로의 운명이  풍전등화인 작은 나무들을 구해와 정성스레 키우는 분재라면 언젠가 나도 한번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방안에도 작은 나무들이 창가에 줄을 서 있다.

 

  난 화분들도, 음향기기도, 차상도 큰돈을 들여 산 것들이 아니다. 버려진 것들을 살려내기도 하고 선물 포장 박스를 재활용하기도 한 물건들이란다. 바로 이런 지혜를 배우고자 온 것인지도 모른다. 정갈하되 화려하진 않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은 서재다. 차의 향을 즐기되 다도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와 서재의 분위기가 닮았다. 기독교 신앙 관련 서적이 많이 있는가 하면 남미의 어느 혁명가 평전, 다빈치 코드, 중국의 어느 사회주의 혁명가 관련 책들이 꽂혀 있기도 한 책장도 이채롭다. 여행 관련 책들과 앨범들이 많아 여행가의 서재임을 알게 해준다. 영화 테이프들과 자료집들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조금 후에 천안에서 교사이며, 낚시꾼이기도 하고, 산 사나이가 되기도 하는 또 한 블로그가 부부동반으로 도착한다.

 

  저녁식사는 특급호텔 뷔페. 자가용 없이 다니고 용돈을 아껴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특급호텔 뷔페를 대접받는 것이 부담스럽다. 동네 삼겹살 집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긴 했지만 결국은 뷔페에서 폼 나게 저녁을 먹는다. 한 달 용돈 30만원 중 10만원은 남을 위해, 10만원은 여행경비로 저축하고 10만원을 용돈으로 쓴다는 이야기에 부끄러워진다. 그런데 손님 접대는 호텔 뷔페에서. 안압지를 잠시 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손님들을 위해 황남빵까지 사고.

 

  다시 돌아온 서재. 오랫동안 아껴둔 술을 내온다. 본인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지만 손님들을 위해 술상을 마련한다. 6~8년의 연하들과도 격의 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여행이야기에 게스트 하우스에 대한 꿈까지. 여행할 때마다 한 권씩 작성한다는 한 권의 다이어리를 통해 그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른다. '어리버리'라는 스스로의 평가는 지나친 겸사였다. 

 

  주말의 일정을 위해 먼저 안동으로 돌아올 때 기어이 역까지 배웅을 한다. 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가르치는 교육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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