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맏아버지 vs 큰아버지

안동에 사노라면 2007. 3. 19. 03:32

지난해 술자리에서 안동 출신의 어느 서예가와 이야기 중에 자주 '우리 맏어매'란 표현을 쓴다. '맏어매'라면 '맏어머니'로 '큰어머니'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왜 쉬운 '큰어매'를 두고 '맏어매'라고 할까? 혹시 이 분의 그 '맏어매'는 '큰어머니'와는 다른 뜻 예를 들면 아버지의 정실 부인이 아닐까? 그럼 이 분이 소실의 아들인가? 이런 생각들을 했지만 면전에서 물어볼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넘어갔다.

올해 들어서 청송 출신의 다른 지인이 말하기를 자신이 어릴 때 배우기를 '큰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의미하고 정작 오늘날 우리가 아는 '큰아버지'는 '맏아버지'라고 부르도록 배웠다고 한다. 같은 경상도에 살아도 나는 그런 이야기 들어본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좀 이상했다. 경북 북부지역에서만 그런 호칭을 사용했나 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얼마전 고서를 검색하다가 재미있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그 책 첫 페이지에 대부(大父)라는 호칭의 설명이 있었다. 大父 : 稱己之祖父也. 자신의 할아버지를 대부 즉 '큰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말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원래 우리가 할아버지를 '큰아버지'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옮긴 것인지 한자에 할아버지를 대부(大父)라고 적혀 있으니 옛 선비들이 '큰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의미한다고 가르친 것인지는 모르겠다.

 

 

  우측 하단의 대부

 

이 책은 필사본 중에서는 제법 비싼 편인 거금 2만 5천원에 산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손에 넣은 것을 만족하고 있다. 뒷부분은 '염락풍아'라는 흔한 내용의 책인데 그 부분을 보고 산 책이 아니고 앞 부분이 다른 책에서 보기 드문 책이어서 샀다. 앞부분은 일종의 용어사전으로 가족간 호칭, 한문 문장에 쓰이는 한자의 뜻풀이, 계절별 문자 및 뜻물이, 각종 문장에서 한자의 뜻풀이, 별자리 이름으로 생각되는 한자 뜻풀이, 월별 속명이라고 해서 그 달의 다른 이름과 그 달에 포함되는 날들의 이름과 뜻. 일별 속명이라고 해서 하루의 시간에 따른 명칭 등이 있었다. 중간 부분은 수신, 언행, 의식, 효, 형제관계, 부부관계, 친구관계, 자손양육, 충, 관리와 법에 대한 태도, 농업, 상업, 천지, 사람의 도리, 금수, 벌레와 물고기, 초목, 산천, 바다에 대한 자신의 뜻을 밝힌 책이었다.

각종 문장에서 한자의 의미를 풀어놓은 부분에서는 한글로도 적혀있었다. 그 부분의 한자들을 모르는 것이야 당연하다고 치더라도 풀이를 한 한글을 봐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았다. 일반(一般)을 한가지라고 하고 다반(多般)을 여러가지라고 한다거나 막시(莫是)를 안이니(아니니) 한 것 정도야 이해를 하겠는데 나머지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누군가 이 책에 있는 한글 풀이를 보고 그 의미를 다 이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분의 학식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 부분은 국어학 자료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연구에 필요한 사람 있으면 한글이 있는 부분은 스캔해서 보낼 생각도 있다.) 

 

 

 누구 한글 해독 좀 해주세요 

 

월별 속명에 보면 과거에는 많은 날들에 이름이 있고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현대에 무슨 기념일, 00의 날 하듯이 당시 농경 사회에서는 각 날들에 나름대로의 의미가 필요했으리라. 우리가 흔히 한식(寒食)이라고 부르는 날을 이 책에서는 백오절(百五節)이라고 표현했다. 동지가 지난 후 105일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따져 보면 된다.

 

흔히들 한식이라고 하면 중국의 개자추(介子推)와 관련지어 이야기한다. 춘추시대에 중이(重耳)가 어려움을 겪은 후 진나라 문공(文公)이 되어 전날의 충신들을 포상했다. 이때 과거 문공이 굶주렸을 때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서 바쳤던 충신 개자추가 이 포상자 중에 들지 못했다. 개자추는 부끄럽게 여기고 산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문공이 뒤에 잘못을 뉘우치고 그를 찾았으나 산중에서 나오지 않았다. 불을 놓으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불을 질렀는데 그는 끝내 나오지 않고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 죽었다. 이에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날은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冬至後百五日也春屬東方木故恐火威禁火國中乃周之遺俗也.  或云介子推焚死故作寒食非也.라고 설명하면서 동지 후 105일이 되는 날이 불이 잘 나는 때여서 불을 금하던 주나라부터의 풍속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개자추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그에게는 한식이 아니라 백오절인 것이다. 4월 5,6일이면 중국 중원이나 한반도 중부 지방은 아직 마른 상태다. 겨울 동안 말랐던 대지는 아직 새로운 풀이나 잎으로 완전히 덮이기 전이라 불이 붙기 쉬운 상태다. 반면 사람들은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풀고 새해 농사를 위해 들로 산으로 나가는 때이기도 하다. 이 때는 바람이 많이 부는 계절이기도 하다. 지금도 식목일 전후로 산불이 많이 나고,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 입산 통제를 하기도 한다. 이 책을 쓴 선비의 과학적인 태도를 본다.

 

 

 

  백오절에 대한 설명

 

<<태종실록>> 태종 10년(1410)년 2월 22일 기록에도 여기에 관한 내용이 있다. 태종이 향식제를 마친 후 한식은 개자추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자, 당시 대언代言 직위에 있던 김여지가 개자추에 대한 설은 이미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났다고 하면서 이 시기에 빠른 바람과 심한 비가 있어서 역가(曆家)에서 한식이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 己未/上詣文昭殿, 行寒食祭。 初, 上因傳香祝, 問左右曰: "古者迭用三正, 而寒食未嘗沿革。 或曰因介之推之故也。"金汝知對曰: "介子之說, 古人已非之, 但冬至後一百五日是也。 時有疾風甚雨, 故曆家謂之寒食。"

김여지의 설명보다는 이 글을 적은 선비의 설명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는 4월 초파일이 석가가 태어난 날이라 저녁에 등을 본다는 언급도 하였는데 조선의 유학자로서는 불교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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