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안상학의 시서전 안동숙맥(1) - 소개

안동에 사노라면 2010. 11. 7. 23:40

1. 안상학

 


2010년 10월 29일에서 11월 3일까지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안상학 시인이 시서전을 열었다. 말하자면 자신의 시를 붓글씨로 써서 보여주는 전시회를 연 것이다. 안상학 시인은 내가 형, 동생하며 말을 트고 지내는 유일한 시인이기도 하다. 도록에 있는 그의 소개를 옮긴다.


1962년 경북 안동시 운곡리 용수사 절터에서 태어났다.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7年 11月의 新川」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는 『그대 무사한가』『안동소주』『오래된 엽서』『아배생각』이 있다.

그밖에 산문 공저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

평전 『권종대-통일걷이를 꿈꾼 농투성이의』가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시회를 위해 찬조작품을 내어준 문학, 예술가들은 다음과 같다.  

장종규(서예가), 박남준(시인), 박창섭(서예가), 신태수(동양화가),

이정록(시인), 김동진(서예가), 장태묵(서양화가)  


2. 초대의 글

 

글쟁이는 글만 쓰는 줄 알았더니 글씨도 쓴답니다.

시인이 자신의 시를 붓으로 표현하면

시가 어떤 모양을 할지 자못 궁금합니다.

글씨가 그의 호 (미천, 眉川)처럼

눈썹 미끄러지듯, 물 흐르듯 할까요?

아니면 가끔 쓰는 그의 필명(노을고개)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붉게 물들일까요?

몹시 궁금해진 몇몇의 벗들이 멍석을 깔았습니다.

이와 자리를 만들었으니 같이 모여서 보고 즐겼으면 합니다.

 

유용주, 김종규, 한창훈, 박경환, 권기혁, 권두현      두손 

 

초대하는 사람들은 안상학 시인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로 시인, 의사, 소설가, 국학자, 사업가, 문화기획가 등이다. 초대의 글은 조금 유치한 수준이다. 초대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유명한 인사들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넣어준 데 감격해 시인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뭔가를 기여하기 위해 전날 밤의 술로 인한 숙취가 있는 상태에서도 얼른 이 초대의 글을 써서 제공했다는 소문이 있다. 아마도 유명인과 이름을 같이한 이 전시회의 초대장과 도록을 가보로 보관할 가능성이 있는 위인이다.  

 

3. 자서(自序)


헛, 그, 참 내, 원……


  집에서 새는 바가지 집 나간들 어디 가랴. 골박에 처박혀 몇 번 끼적거린 붓질 깜냥으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여기저기 흘린 탓에 이 지경까지 왔다. 그 놈의 술이 원수다. 다 내 탓이다.

  술이 취하면 보이는 게 없나 보다. 당대에 일가를 이룬 嵐川선생 서실에서, 漢鈞형 서재에서 종이를 어지럽혔으니 가소롭기 짝이 없는 영판 홀아비 꼴이다. 이 놈의 성정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취기가 오르면 지나가는 똥개 꼬리만 보아도 붓질하고 싶어 환장하고, 문어탕 속 먹물만 보아도 와라바시로 찍어대는 이 괴상막측한 버릇은 당최 그 유래를 짐작키가 가자미 발바닥이다. 서당이라고는 오성과 한음만 다니는 덴 줄이나 알았고, 붓이라고는 김 구울 때 참기름 칠이나 하는 용도로 알았지 글씨는 무슨 글씨. 서실이라고는 남천 선생 木硯에 터억하니 한 달 끊어놓고 딱 사흘 한 一字 그어본 게 전부이고 보면 글씨 내력이야 하루살이 삼년상이 진배없다. 전생에 붓질 못해 죽은 귀신이 덮어 쓰였는지 사주를 뒤져봐도 나오는 괘 또한 가관이어서 물총 찬 카우보이요, 몽당비 비껴 맨 사무라이 꼴이니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런 종자가 글씨는 무슨 글씨. 헛, 그, 참.

  술을 탓했느니 이젠 벗들을 탓할 순서다. 지난봄이었을 거이다. 한국화를 하는 易齋의 작업실인 樓雲齋에서 달빛 사냥주를 마시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 놈의 달빛만 보면 회가 동하는 늑대科 주당들이 모였으니 오죽했겠는가. 취기가 올라 정수리에서 술 샘이 솟을 즈음 되니 사시미 간장도 먹물로 보이기 시작하고, 와라바시 끝에서는 아닌 돼지털이 돋은 듯하니 예의 못된 버릇이 어이 가차가 있을 건가. 집에서 새는 바가지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니 오호라! 평소 주인의 먹물 총애를 못 받아서 잘려나간 자투리 종이들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연민이라면 둘째 가기 아까운 소치에다 외면은 고려장에 보내고도 천년이 지났으니 어쩌랴. 평소 먹으로 먹고 사는 주인장이니 만큼 먹물 또한 넉넉하겠다. 지천으로 널린 게 붓자루니 아무 거나 집어 들고, 찍고, 갈기면 그만이었다. 꼴에 쓰는 것이라고는 ‘꽃 다함께 피어야 봄’이었으니 봄이 오다가도 비껴갈 노릇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날 이후로 到海와 水影이 오늘 같은 이런 시서전을 하라고 못살게 굴었다. 술 취하면 그러마고, 술 깨면 내가 무슨, 반복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이쯤에서 꼬리 내리자면, 다, 내, 탓이다.

  천성이 미욱한 탓에 맨 정신으로는 절대 남에게 보일만한 작품이 아님을 늦게야 깨닫고 땅을 칠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너무 남발한 약속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잘 쓴 글씨를 두고 平砂落雁이라 했던가. 머릿속에 맴돌던 어여쁜 기러기들은 어딜 가고 온갖 뼈 없고 발도 없는, 길고 짧은 벌레들이 종이 가득 구물거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몸서리를 쳤다. 붓을 들면 어깨는 굳어가고 허리는 끊어질 것만 같고 다리는 뻗정다리가 되어가고 눈앞은 그저 캄캄할 따름이었다. 날은 다가오고 조바심은 나는데 마음에는 차지 않으니 진땀이 한강이요 애간장은 불타는 사막이었다. 이 무슨 개고생이람. 수없이 중얼거렸다. 헛, 그, 참, 내, 원.


  붓글씨를 쓸 때 획의 실수는 그 다음 획으로 감싸고, 한 자의 실수는 그 다음 자 또는 다음다음자로 보완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행의 결함은 다음의 행의 배려로 고칩니다. 이렇게 하여 얻은 한 폭의 서예 작품은 실수와 보상과 결함과 사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양보하며 감싸주는 다사로은 인정이 무르녹아 있습니다.(신영복)


  개고생할 때 구세주처럼 다가온 말이다. 평소 한글의 조합이 아름다운 것은 알고 있었는데 붓글씨에 이렇게까지 곡진하게 ‘미학에세이’를 덧붙인 쇠귀 선생의 혜안이 가슴을 울렸다. 이 글귀는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안내자가 되었다. 성미가 급하여 한두 자 버성기면 구겨버리는, 끝까지 써보는 인내는 애당초 찜 쪄먹은 화상이 보기엔 더없이 좋은 선생이었다. 인내를 배웠고, 조화로운 삶을 배웠다. 다 나에게는 부족한 것들이다. 글씨가 잘 되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글씨를 쓰면서 인내심을 기르고 조화로운 삶에 대한 반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앞으로도 이 작업은 정성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다. 좋은 글씨를 도모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한 걸음 한 발짝 나아가는 行이 더 소중하다는 것 또한 나에게는 귀감이 되었다. 이쯤 되면 벗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다 인간이 되라는 뜻으로 되새긴다.

 

     경인 가을 미천재에서 안상학

 


4. 跋文


이도윤(시인)


휘어져 보이나 휘지 않았고

거칠어 보이나 그의 순정은 정결하다

안동 소주 냄새가 나나

불이 만든 물방울이다

이것이 시인 안상학이다

그는 나하고 늘 술자리에서만

반가운 웃음을 나누어 마셨다

도대체가 ‘그만’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우리에게

술이 놓여있으니 그야말로 만취할 때까지

마시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 그는 내앞에 왔다가곤 했다

술이 그에게 스미면 그는 시를 뱉어내곤 한다

세상을 마시면 그 안에서 시가 자란 것이다

그러나 어찌 시만 자랐으랴

詩•書•畵가 본디 하나인데

그은 진정한 시인인지라

읊으면 詩가 되고 쓰면 書가 되었을 터, 


그의 글씨는 곧 시이고 그림이다

나는 그의 글씨를 진즉부터 보아왔으며

육필시에 대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붓글씨 공부를 했었는지 어쩐지는

불어보지도 않았고 중요하지도 않다

그가 시인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글씨를 통해

그를 다시 보는 듯하고

그의 시를 통해

그의 글씨를 보아온 것이다

그는 안동 소주에 붓을 적셔

하늘에 대고 또 거침없는 시를 쓸 것이다

오늘 이 강물 같은 글씨를 보라

이제 그의 붓 앞에서 우리가 건배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5. 축하의 글


  시인이 의지해 걸어가는 길이자 마침내 다다르려는 시는 도와 닮았다. 선인들은 ‘일용사물의 도’라는 말로써 그것이 저기 높고 먼 데가 아닌 평범하고 때론 남루한 일상 가운데 있음을 강조했다. 그래서 시를 경으로 꾸려 시인들의 대선배가 된 공자는 아침에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 없겠다는 간절함으로 세상의 길 위에서 도를 찾았던 것이다.

  시 역시 일상을 떠나 있지 않다. 그러나 일상이 곧 시인 것은 아니다. 그늘 없어 쨍쨍한, 그래서 사물을 봄이 심상한 마음에선 일상이 시로 맺히지 못한다. 이 점이 다 같은 우리들이 시인과 안 시인으로 나뉘는 소이일 것이다.

  벗이라 하지만 나는 그의 속내를 기웃거려 본 적이 없다. 다만 그의 말과 시의생간에서 안고 가는 그늘을 짐작할 뿐이다. 안시인은 그런 마음으로 자신만의 방이 아니라 부대끼는 일상 속에서 시를 건져 올려왔다.

  이제 그런 시들을 마음 가는대로 쓴 글씨에 담았다. ‘안동숙맥’이라 이름한 것은 영악함으로 겨루고 달달함으로 꾀는 세태에 질박한 이를 그리는 마음이고, 스스로 그런 시의 길을 가려는 뜻이 아니겠는가.

  지난 반생 마음의 생채기를 ‘패악지기는’데 쓰지 않고 시로 쓴 것이 우리에겐 복이었다. 남은 날도 술 기울이며 좋은 시 들려주실 바란다.

     시인의 안 시인 박경환이 쓰다.


이 글을 쓴 박경환 선생은 경주에서 태어나 고려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다 뜻한 바 있어 대학원부터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현재 국학진흥원 선임연구원으로 있는 동양철학자다. 시에 대한 깊은 이해뿐만이 아니라 문화 전반에 대해 깊고 폭넓은 이해와 함께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실제 그런 아이디어를 실행해 나가는 실천적인 학자다. 이 글은 중국 출장중에 E-mail로 보내온 것인데 백주로 만취 상태에서 썼다는 악성 루머가 시중에 돌고 있다.

 

6. 음지에서 일한 사람들 

 

이 전시회를 위해 초대하는 사람 명단에 올라있는 권기혁씨가 전시회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많은 고생을 했다. 그리고 전시회장을 지키고, 행사를 준비한 물아낙 회원들의 노고가 아주 컸다.  이름 한 자 올리지 못하며 많은 노고를 아끼지 않은 물아낙 회원들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