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재미 중 한 가지가 공통 어원을 가진 낱말을 찾아 기록해 두는 것이다. 우리말과 일본어가 동일한 뿌리에서 나온 언어라는 믿음을 가진 나는 언어학엔 문외한이지만 두 언어 사이에 공통의 어원을 가진 낱말들이 많을 것이고 그런 낱말들을 보아보면 분화 과정의 일정한 양상이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연구를 한 학자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직접 연구할 수 없는 문외한이니 직접 연구해보겠다는 생각보다 이런 자료들을 모아두면 누군가 연구할 사람들에게 기초 자료로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한겨레신문에 난 기사 하나가 나의 기를 꺾어 놓는다. 시즈미 기요시라는 일본의 언어학자와 박명미 일본규슈산업대 강사가 춘천에서 열리는 한말연구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한어사 상대연대학 서설'이란 논문을 15일 발표한다고 한다.
한겨레신문 기사는 "이 논문은 주요 어휘의 음운 비교를 통해 한국어와 일본어 어느 것이 먼저 형성돼 다른 쪽에 영향을 줬는지를 밝히는 '상대연대학'의 이론틀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어근이 같은 두 나라 어휘를 비교하면서 [m], [b] 등 한국어의 입술소리가 일본어에서 '음의 약화현상'에 따라 [h] 소리로 바뀌는 법칙성을 분석하고, 이런 음운변화가 두 나라 언어의 '상대연대' 측정의 기본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논증했다."고 소개한다.
특히 내가 눈여겨본 부분은 "2002년부터 3년여 동안, 한·일의 고유어 어휘 7천개(파생어 포함) 이상이 같은 어근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고 하는 부분이다. 한 달 가까이 공부하는 교재에서 나온 단어 중에서 같은 어원일 것으로 추정되는 낱말 20여개를 모았는데 7천 단어라면 내가 앞으로 열심히 모아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다. 언어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할 기초자료 수집의 꿈은 여기서 접어야 하는 모양이다. 아, 허망함이여.
두 연구자는 스승과 제자 사이로 시즈미 기요시 교수는 언어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라고 한다. 이들은 일본어가 한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일본어를 아예 '열도 한어'로 분류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를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연구는 물론 알타이어 전체에 대한 연구로 관심을 넓히고 있다고 한다.
내 생각이 전혀 황당한 생각은 아니었음을 대학자가 논증했으니 개인적으로 다행이고, 한일 언어의 비교언어학적 연구가 체계를 잡아가는 계기가 되니 그 학문적 성과도 축하할 만한 일이다. 기사에서 예로 든 '다발'이라는 의미의 '다(타)바'는 최근 내가 수집해 둔 낱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내 새로운 취미생활의 의미가 거의 없어지게 되어 섭섭한 면도 있다.
이 기사에서 제시된, '어근이 같은 한국어와 일본어' 예를 보면서 비록 문외한이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제시된 예 중에
'모루(moru)'는 '(물이) 새다'라는 의미의 일본어인데 영향을 준 한국어가 '물'이라고 제시하였다. 내 생각에는 '물'이라는 의미를 지닌 '미즈(miz)'라는 단어 자체가 한국어의 '물'과 같은 어원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어의 'ㄹ' 발음이 일본어에서 'ㅈ , ㅉ' 발음으로 변하는 경향성이 있어 보인다. 이런 과정에 있는 것이 '~들'이라는 의미의 '~타찌', '마을'이라는 의미의 '마찌'같은 말이나 한자어의 음독 과정에서도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새로 시작한 취미생활이 언어학 대가들에 의해 의미가 거의 없어지니까 괜히 심술이 나서 대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언어학의 기초도 모르는 인간이 궁시렁거린다. 좌우지간 조금 허탈하다. 왜 내가 뭘 좀 재미있게 할려고 하는데 대가들이 말리는거야? 신경질나는데 본격적으로 언어학을 공부해버려?
기사 http://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5/07/0090000002005070817210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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