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고픈 중국 공민에 복무함.
여행 마지막 저녁. 남경로 거리로 자유여행을 다닐 때였다. 별로 갈 곳도 없고 해서 맥도날드에서 뭘 좀 먹고 화장실 간 가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한참을 서 있던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딸이 맥도날드 안팎을 드나들면서 한번씩 보이는 것으로 보아 30대 중반의 기혼여성인 것 같았다. 화장기는 없었지만 깔끔한 차림이었다.
이런저런 말을 (영어로) 걸어오길래 중국와서 개인적으로 중국 사람과 (그것도 여성과)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도 좋아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이틀전 북경에서 왔다고 했다. 조금 후 자신이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딸아이가 배고파 하니 빵 사줄 돈을 조금 달라고 했다. 돈이 별로 없다고 하며 10원을 주니 콜라도 먹이고 싶다고 했다. 동전 4.5원을 꺼내 주니 맥도날드 안으로 들어갔다.
80년대 한국의 '차비' 사기꾼들이 연상되는 사건이다. 아내는 무조건 사기꾼으로 몰아붙인다. 사기를 당한 것이어도 좋다. 중국 현지인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값으로 우리돈 2000원을 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2천원 사기치기 위해 정문 앞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린다는 것은 별로 효율성이 없어보인다. 혹 청운의 꿈을 안고, 빈털털이로 번영의 도시 상해로 온 사람은 아닐까?
2) 일행들
일행들 중 우리가족이 가장 재미없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분들은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조선족 가이드 엄선생님도 내 여행 경험으로는 좋은 가이드였다.
특히 처남동서지간의 두 부부는 아주 재미있게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두 남편들은 아내가 항상 내게 좀 배우라고 하는 그런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나도 그런 성격을 배우고 싶지만 천성적으로 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유머로 넘기는 그 사람들 같은 성격도 있고 항상 심각한 나같은 성격도 있고 그런거지 뭐.
이번 일행에는 젊은 청춘남녀들이 제법 있었다. 특히 미모가 뛰어나 아가씨들 몇 명과 매너가 좋은 총각들 몇 명이 있어 젊은 사람들끼리의 분위기도 좋아보였다. 청춘남녀가 모이면 작업이 진행되는 법. 그렇지만 한 아가씨를 제외하곤 엄마와 동행한 사람들이라 아무래도 그 아가씨에게 총각들이 모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젊은 처녀총각들이 어울리는 모습은 언제 봐도 좋다.
몇 팀은 우리 가족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쇼핑에 별 관심이 없고, 그냥 뒤따라 다니며 구경하고. 적당히 사진 찍고.
3) 가족
이번 여행은 또 내가 아직 수양을 많이 해야 함을 입증한 여행이었다. 외국에서, 낳선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예민하게 만든 모양이다. 저녁에 가게에서 산 이과두주, 맥주로 아내와 한잔하면서 아이들과 재미있게 보내기도 했지만 가족들과 갈등도 많았다.
여행기간 내내 아들과의 갈등이 있었다. 음식을 먹을 때 다른 가족이 함께 하는 식탁에서 아들놈이 젓가락을 대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참고 보기 힘들었다. 한번은 아들이 젓가락을 대었다가 너무 큰 덩어리의 고기라 포기하는 것을 보고 민망해서 내가 그 덩어리를 집어 아들의 접시로 옮기니 요리 접시 고기의 상당부분이 아들 접시로 옮겨졌다. 더욱 민망하고. 이동할 때 조그만 물병 하나도 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보면 더욱 짜증이 나기도 하고. 쉴새없이 먹는 것 타령에도 짜증나고. 명품을 밝혀 짝퉁이라도 사려는 것이 짜증나고.
딸아이와도 갈등이 있었다. 귀국행 비행기 티켓을 받을 때 딸아이가 먼저 보겠다고 가져갔다. 나는 단체 비자로 왔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착오가 있으면 귀국에 문제가 생긴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뺏았다. 딸아이는 그것 좀 보는 것이 어떻다고 그러냐고 항변하고. 출국장에선 어떻게 잘 해 보려고 딸아이 옷 사러 갔다가 탈의실 문이 잠기는 바람에 거의 2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고. 그 옷 계산할 때 카드 제출했다가 남은 달러 쓰고 남는 금액만 카드 긁지 몽땅 카드 긁었다고 아내에게 한소리 듣곤 나도 열을 받아 버렸다.
마지막 비행기 안에서는 아내와의 충돌이 있었다. 두 자리만 옆자리고 나머지는 좌석이 떨어져 있어 아내와 딸을 옆에 앉도록 표를 바꾼 것까지는 좋았는데 아들놈 자리를 확인하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내가 그 자리로 가겠다고 표를 좀 보자고 했다. 아이들이 보여주는 표가 아들놈 표가 아니어서 다른 표를 좀 보자고 한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던 모양이다. 아내는 이런 모습을 보고 또 아이들에게 권위적으로 대한다고 생각해서 내게 역정을 내고. 남들 보는 앞에서 (그것도 사투리로) 무안을 당한 나는 삐치고.
이번 여행에 모녀간으로 구성된 팀이 몇 팀 있었는데 좋아 보였다. 다음 여행엔 아내와 딸만 보내는 방법도 생각해봐야겠다. 외국 여행을 싫어하는 아들놈, 이제 꼭 가고 싶은 나라가 아니면 별 흥미가 없는 나, 외국여행은 돌아다니지 말고 어느 한 곳을 정해서 실컷 놀 수 있는 것이 좋겠다는 딸아이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다만 아이들 품안에 있을 동안에는 무조건 네 식구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아내가 있어 어려울 것 같다.
여행을 마치고 여행 중에 가족과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 대부분이 자신도 여행 중에 싸운 경험이 있다고들 했다. 어떤 사람은 "내년부터 둘이 같이 여행가지 말자. 휴가 땐 넌 너대로 난 나대로 보내다."고 까지 말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4) 비용
나름대로 짠돌이로 살아서 이번 여행에 국내경비 포함해 총 158만원이 들었다. 정해진 일정에 있는 쇼핑에서는 전혀 쓰지 않았고 마지막 날 저녁에 상해 시내에서 아들 지갑 하나 사고, 공항 면세점에서 딸의 당의(중국 전통의상) 한벌을 35달러에 샀다. 직원들 선물은 부채 24개, 술 두 병을 사서 3만원 정도 들었다. 1인당 39만 5천원. 원래 약 170만원이 들었으나 여행사에서 귀국 비행기 티켓을 출발 시간 변경불가 티켓으로 바꾸는 조건으로 1인당 3만원씩을 할인해 줬는데 귀국 후 확인해 보니 12만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그래서 총 경비 158만원이 되었다. 대략적인 사용 내역은 다음과 같다. 일부는 달러나 중국 돈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천원 단위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적으로 맞추었다.
여행비 26만 9천원 x 4 = 107만 6천원
가이드 팁 3만 5천원 x 4
= 14만 원
비자 1만 9천원 x 4
= 7만 6천원
국내
여비(대략)
14만 원
직원
선물비(대략)
3만 원
아들
지갑 1만
5천원
딸 중국전통의상(대략) 4만
원
식음료
등(대략)
6만
3천원
합(대략)
158만 원
우여곡절 끝에 여행을 마치고, 네 시간 이상을 운전해 집으로 돌아왔다. 상해에서 인천까지는 1시간 반이면 오는데 인천에서 안동까지가 그 시간의 세 배 정도 걸렸다. 토요일 출근하니 일은 산더미처럼 밀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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