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에 보면 김구선생이 강소성에 가까운 절강성 가흥에 피신할 때 '가흥에는 산이 없으나 호수가 낙지발같이 사방으로 통하여 7~8세의 어린 아이라도 다 노를 저을 줄 알았다.'고 했는데 이는 소주를 비롯한 강소성 일대에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이 도시는 동양의 베니스라고 알려져 있다고 한다. 중국에 "(上有天堂 下有蘇杭)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소주와 항주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이었으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
지세를 보니 오월동주(吳越同舟)란 말이 실감난다. 오월동숙(吳越同宿)도 아니고 오월동식(吳越同食)도 아니고 오월동주가 된 데에는 이 지역의 사람들이 배를 많이 이용했으니까 생긴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사성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역사적 배경뿐만 아니라 지리적 배경도 이해해야 하는 것을. 요즘도 운하가 발달해 있고, 이 곳에는 돈 있는 사람들은 자가용 배를 한 척씩 가지고 있다나.
가는 길에 보이는 집들의 상당수는 지붕이 검고 벽이 흰 색인데 지붕의 검은 색은 먹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 집안에도 학자가 있다는 과시 혹은 그런 바램을 상징한다고 한다. 배운 사람들을 먹물이라고 하는 말의 어원이 이 동네에서 나왔나?
호구산(합려(闔閭)의 묘)
소동파(蘇東坡)는 "到蘇州而不遊虎邱, 乃是憾事"라는 표현을 했는데 이는 "소주에 와서 호구를 구경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호구산은 오중제일산(吳中第一山)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일대에서는 가장 높은 산인 모양인데 높이가 36미터를 조금 넘을 뿐이라고 한다. 이 산은 오나라의 왕 합려가 묻혀 있다고 한다. 이 산에 합려가 묻혀있다면 그 아들인 부차(夫差)가 만들었을 것인데 와신(臥薪)하면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한 효자라면 아버지의 묘를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겠다.
이 산의 이 산의 원래 이름은 해용산(海涌山) 이었는데, 호구산이라고 불리게 된 유래가 몇 가지 전해지는 모양이다. 호랑이가 웅크려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호구산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합려를 묘지로 장례를 지낸 지 3일째 되던 날 백호 한 마리가 나타나 능을 지켰다는 전설에서 호구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한다고도 한다. 합려의 무덤을 만들 때 관 속에 검 3000개를 함께 묻었다고 한다. 혼란했던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은 이 검들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보는 앞에서 도굴을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왔고,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도굴은 중단되었다. 도굴하면서 파헤쳐진 곳에 물이 들어차서 연못이 되었고, 사람들은 이 연못을 검지(劍池)라고 부른다고 한다. 호구산에는 실제 깊게 파인 물이 있고 그 위의 벽은 벽돌로 되어 있어 도굴을 시도한 것에 대한 신빙성을 더해준다.
오합려의 무덤 위에 위치한 호구탑 - 북서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다고 한다.
검지 위로 나 있는 다리에 구멍이 두 개 있는데 월나라 미녀 서시(西施)와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한 구멍은 서시가 마시던 물을 긷던 구멍이고 다른 한 구멍은 서시가 자신의 얼굴을 물에 비춰보던 구멍이라고 한다.
서시의 구멍 - 이제 막아 놓아 중국에서 더이상 절세미녀는
나오기 힘들 듯하다.
산 위에는 호구탑이 있는데, 8각7층의 벽돌탑으로 높이가 47.5m이며 수나라 때 지어졌는데 북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고 한다. 호구탑 아래에는 아주 넓은 천인석이라는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합려의 능을 조성한 기술자들의 입을 봉하기 위해 능에서 나온 사람들을 죽인 자리라고 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피가 맺혀 지금도 비만 오면 넓은 바위의 갈라진 틈새로 검붉은 물이 나온다고 한다. 바위에 철분이 많은가?
합려의 무덤을 만든 석공들을 죽였다는 천인석 - 혹 순장을 시킨
것은 아닐까?
호구산에는 이 외에 양나라의 승려 감감이 찾았다는 감감천, 보검을 시험하기 위해 바위를 단칼에 베어낸 흔적이라는 두 조각난 바위인 시검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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