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토요일은 방이 없어

안동에 사노라면 2005. 9. 4. 17:44

이번 주말은 반갑고 정신없는 주말이었다. 쪽방 상담소, 북한이주민 상담소, 자원봉사센터 1곳을 운영하는 대구의 자원봉사능력개발원 직원들이 병산서원 근처에 연수를 오기로 되어 있었다. 원장님의 부탁으로 저녁에 참석하여 분위기를 (술로) 돕기로 되어 있었고, 30년만에 만나는 초등학교 동기 pelops님이 토요일 멀리 천안에서 오기로 되어 있었다.

 

자원봉사능력개발원이야 원장님과의 친분으로 관계를 맺은 곳이고 원장님은 명절 전날이면 만나게 되어 있으니 꼭 가지 않아도 될 자리 같았다. 일요일 안동 지역 관광 가이드를 해 주기로 하고 토요일 저녁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초등학교 동기 pelops님이 멀리 안동까지 오는데 집에서 잘 수 있도록 하고 집에서 식사도 한끼 대접해야 당연하나, 아내는 집에서 잠을 자는 것은 좋은데 요리에 자신이 없어 손님에게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너무 스트레스가 되고, 친구네 부부가 집에서 잘 경우 아침을 대접하지 않고 보낼 수도 없으니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친구도 옛날처럼 생각하지 말고 잠은 당연히 밖에서 잘 생각을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입장이었다.

 

오후 3시 30분경에 하회마을 앞에서 친구 부부를 만났다. 30년 만에 처음 보니 친구도 처음 나를 대할 땐 서먹했다고 한다. 하회마을을 둘러보고 있을 때 비가 왔다. 비도 피할 겸 점심을 굶은 친구 부부 요기도 할 겸 식당에서 파전 하나를 먹고, 부용대, 병산서원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병산서원 부근에선 개발원 원장님도 잠시 뵙고.

 


  부용대에서 하회마을을 배경으로 선 pelops님. 너무 미남이라 좀 신경쓰이네.

  (부부가 찍은 사진이 더 잘 나왔는데 혹 사생활 침해가 될까봐...)

 


 하회마을 삼신당에서 기원문을 끼우는 pelops님, 난 늦둥이 보는 것으로 권했는데 본인은...

 

집에 들러 차 한 잔을 간단하게 마시고 두 부부는 저녁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집 앞 고급(?) 횟집에 가면서 생각하니 오늘 비도 오고 토요일인데 손님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횟집에 들어섰다. 그런데 방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앉을 자리가 없다고 돌아가란다. 그 집을 나와 다른 횟집에 가니 여기도 방이 거의 다 찼다. 우리가 들어간 방은 아직 상을 치우지도 못한 상태였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이렇다 할 산업도 없는 안동에서, 그것도 토요일에 횟집 자리가 없어 돌아서다니. 친구 부부는 놀란다. 안동 경기가 엄청 좋다고 착각할 것 같아 나와 아내가 보충 설명을 했다. 안동은 대도시와 달리 토요일에 모임이 많다고. 안동 사람들은 여러 명목의 모임을 자주 가지는데 토요일에 그런 모임이 잘 이루어진다고.

 

나중에 생각하니 9월 4일이 음력으로 8월 첫 일요일. 경상도 지역에서 조상 묘의 벌초를 이 날 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양반 도시인 안동에 각지에 흩어졌던 가족들이 벌초를 위해 모여서 벌초 전날 회식을 가진 경우가 많지 않나 싶다. 고향 친구 모임도 명절보다는 이 날로 잡는 것이 편리하고.

 

1차는 12시까지 횟집에서 50세주로, 2차는 레스토랑에서 맥주로, 3차는 24시간 감자탕집에서 소주로 부부 모임을 계속하니 친구 부인은 거의 비몽사몽 수준이다. 30년만의 회포를 풀기엔 이 시간도 짧았다. 감자탕 집을 나오니 새벽 4시가 넘었다.

 

이제 숙소를 정해야 할 때다. 친구는 오기 전 안동의 호텔 정보를 알아본 모양인데 내가 우겼다. 러브 모텔로 가라고. 우리 직원 한 사람이 결혼 기념일에 러브 호텔에 갔더니 부인이 너무 좋다고 좀 더 있자고 하더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며칠 전 어는 60전후의 부부가 리브 호텔 갔다고 너무 좋아서 아들들에게도 소개해 주고 싶다고 한 글을 읽은 일이 있어서 호텔보다 러브호텔을 권했던 것이다. 우리 직원이 소개해준 그 '쥑인다'는 모텔에 갔는데 방이 없단다. 워낙 인기가 있는 러브호텔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비를 맞아가며 인근의 몇몇 러브호텔을 전전했지만 모든 러브호텔이 방이 없단다. 뒤늦게 우리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이미 우리 집에서 자는 것이 편하지 않다는 것 알게 된 친구 부부가 응할 리 없다. 할 수 없이 호텔 한 곳에 방이 있다는 것을 전화로 확인해 친구 부부를 택시로 그 곳에 보냈다.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커지게 만든다. 안동 경기가 좋지 않다는 말이 거짓말인가? 아니면 벌초하러 온 사람들이 대거 투숙한 것인가? 좌우지간 방이 없었다. 토요일엔 방이 없어.

 

일요일 새벽 5시에 잠자리에 들어 10시에 깨어나 다시 개발원 직원들 가이드를 위해 하회마을쪽으로 갔다. 부용대에 들러 풍수지리를 곁들인 설명을 하니 상당한 수준의 가이드라는 칭찬이 들린다. 장래 가이드로서 희망이 보인다. 봉정사에서는 아는 척을 좀 하려고 나서려는데 전문 문화재해설사가 다른 손님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기가 팍 죽어 조용히 보냈다. 안동댐 아래서 안동간고등어로 식사를 대접하고, 월영교, 영호루를 거쳐 손님들이 가고 돌아와 이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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