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 몇몇 낚시꾼들은 내게 뜨거운 동지애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난 낚시를 취미로 가진 사람은 아니다.
오늘부터 내가 속한 학회의 학술대회가 열린다. 학술대회라 해도 시골에 사는 나야 학문에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니 가서 할 일이라고는 남이 연구한 것 앉아서 좀 들어보는 정도다. 내겐 학은 조금만 하고 술을 많이 하는 게 학술대회다. 학문에 뜻이 없더라도 이런 자리엔 가는 것이 맞다. 저녁 술자리에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어떤 기계는 가격이 싼 것 같아도 소모품 가격이 비싸서 얼마 이상 쓰면 손해라느니, 어떤 기계는 어느 정도 이상의 검사 건수가 아니면 원가가 비싸게 먹힌다느니, 어떤 시약은 어떤 문제가 있다느니 하는 정보들은 대개 술자리에서 나온다. 이런 정보를 본격적으로 연구해서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려면 힘도 많이 들고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기 때문에 이런 정보는 주로 술자리에서 나온다. 어디에 어떤 자리가 생긴다는 것까지도.
당연히 가야 할 이 학술대회에 난 가지 않기로 했다. 아니 못 간다. 제주도에서 열리는 까닭이다. 왕복 항공료에 숙소 참가비까지 합하면 거의 40만원 정도가 든다. 40만원이 뉘집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더군다나 이번 달부터 지출이 늘어나 눈치보며 살고 있는데. 포기하기로 했다. 지난해 가을 학회도 제주도에서 열리더니 올해 또 제주도에서 열린다. 이건 좀 심한 것 같다.
그저께(화요일) 서울에 있는 같은 학회 소속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출신학교나 수련기관도 다르지만 동갑내기에 자격 시험 동기인데다 몇 년 전까지 같은 직장에 근무했고, 한 땐 나의 상관이기도 했던 친구다.
"야, 너 학회가지?"
"아니,(짜식, 넌 출장비까지 받아가니 좋겠다.) 왜? 제주도서 술 먹자고?"
"그게 아니고 콘도를 예약해뒀는데 너 숙소 안 정했으면 같이 쓰려고."
"난 돈 없어 못 간다. 언제까지 있을 건데?"
"10월 2일쯤 (3일이라고 했던가?) 올라올 예정이다."
누굴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번엔 역공.
"야, 학회 치우고 안동에 놀러와라."
"학회는 가야지.(어쭈?, 많이 변했네.)"
"술 사주께 온나."
"돈 없어 학회 못 온다는 놈이 술은 무슨 돈으로 사려고?"
"술값이야 카드 긁고 마누라보고 갚으라면 되는 거잖아."
내가 요렇게 이 친구에게
목매다는 데는 이유가 있다. 10월초에 아이들 중간고사가 있기 때문에 연휴라도 집에 있어야 한다. 아내도 이 기간만큼은 아이들 옆에 붙어 있다.
부부가 집을 비우면 컴퓨터에, TV에 아이들 할 짓이 뻔하기 때문에 시험기간에는 저녁 운동도 같이 안 가려고 한다. 그럼 나 혼자 놀러간다?
천만의 말씀. 그건 맞아죽기 딱 좋은 일이다. 일주일 동안 집에 잘 들어가지도 않은 인간이 주말에 혼자 놀러 가다가는 뼈도 못 추린다. 방법은
있다. 아내도 어찌할 수 없는 강적이 안동에 나타나 같이 나가는 것이다.
"그럼 학회마치고 1일날 온나."
"벌써 비행기 예약했는데 뭐."
"1일날 오면 탈춤축제도 하고, 산사음악회도 열리고..."
"산사음악회?"
물었다. 딱 감이 온다.
"그래, 청량사 산사음악회가 1일날 있다."
"비행기가 있을라나 모르겠네."
"야, 대구 오는 비행기는 많다."
"가면 확실히 술 사주는 거지?"
"그~~럼."
"알아보고 좀 있다 연락해주께."
이제 거의 걸려들었다. 비행기 표만 바꾸면 일은 다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조금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비행기표 바꿨다."
"잘했다. 몇 시 비행기지?"
"한 시."
"안동 오면 네 시에서 다섯 시, 그럼 산사음악회 딱 맞추겠네."
"대구에선 어떻게 가냐?"
"공항에 내려서 택시 타고 동대구 터미널, 중앙고속 가자고 해서, 중앙고속 대합실에서 고속버스 타고 와라."
"네가 대구에 데리러 오면 안될까?"
(잡은 고기에 미끼 주는 놈 봤냐? 그런 부탁은 표 바꾸기 전에 해야지.)
"안동에서 대구가 어딘데 간다 말이고? 터미널까지 택시비 5천원도 안 된다. 그냥 니가 알아서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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