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일본 여행(6) - 새 다리(新橋)의 술꾼들

안동에 사노라면 2006. 10. 2. 00:26

  내게 있어서 일본에 간 주요 목적 중의 한 가지는 일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술집에서 한잔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술집에서 옆에 앉은 일본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더 좋고, 그 옆에 앉은 사람이 여성이면 더더욱 좋고. 더 이상의 희망을 표현하는 것은 공개적으로 밝힐 일이 아니다.

 

  28일 저녁은 전체 모임과 피로로 인해 일찍 잤지만 29일 저녁부터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저녁에 룸 메이트인 백과장을 꼬득였다. 번화가로 나가자고. 교토 타워 부근이 그런대로 번화한 것 같아 주위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느 허름한 건물에 작은 선술집들이 배곡하게 들어차 있어 들어갔다. 10명 정도가 1렬로 앉을 수 있는 선술집들에는 몇몇의 손님들이 앉아있고 사람들의 노래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일단 들어가보기로 하고 어느 집을 갈까 망설인다. 가능하면 여자 손님들 한 팀이 있는 집에 들어가려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어느 술집의 60쯤 되어보이는 주인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 주인 아주머니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보니 그 집엔 젊은 남녀 2,3명과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서 마시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고 싶은 집이 아니다. 그렇지만 남의 나라에서 이런 상황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고 다른 집으로 들어갈 용기는 생기지 않아 마지못해 그 집에 들어갔다.

 

  들어가니 손짓하던 그 아주머니 외에 그 아주머니의 어머니쯤 되는 나이의 할머니도 한 분 일하고 있었다. 일본 술 한 병(술잔만한 병)씩을 주문했다. 주문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 아주머니는 얼굴을 보고 우리가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하면서 '삼성전기' 어쩌구 한다. 삼성전기 직원들도 이 집에 왔다는 뜻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라 삼성전기 상호가 적힌 노래방 책을 내면서 노래를 고르라고 권한다. 그 책은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영어 노래가 수록된 두꺼운 노래방 책이었다.

 

  다른 손님들도 있는데 이 좁은 술집에서 노래를 해도 될런지 물어보니 '다이조부 데스'라고 한다. 그럼 불러야지. '사랑해 당신을'이라는 노래를 일본어로 연습해 두었으므로 한번 부를까 하고 찾아보니 그 노래는 없다. 일단 포기하고 옆의 백과장에게 권하니 조용히 따라다니던 백과장 노래방 책 잡으니 완전 딴 사람이 된다.        

 

  일본 선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백과장

 

  젊은 친구들은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데 혼자 술을 마시던 할아버지 한 분이 계속 우리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일본어로는 대화가 되지 않고 그 할아버지 영어도 자신이 없으니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신 한국 노래를 일본어로 바꾼 노래를 불러 자신의 관심을 표현한다. 조금 있으니 50대의 전형적인 샐러리맨이 들어온다. 이 집 단골인지 주인 할머니는 이 분이 들어올 때 알아서 의자를 정리하고 앉도록 시킨 후 그 사람이 마시던 술과 그 사람의 외상장부인 듯한 장부책을 꺼낸다.

 

  이 사람 역시 우리에게 관심을 가졌고 나 역시 꿩 대신 닭이라고 50대 아저씨나마 그 나라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었으니 대화가 시작되었다. 일본어로는 대화가 힘들다고 생각했는디 날더러 영어가 되느냐고 묻는다. 쬐끔 된다니 자신도 쬐끔 된다고 해서 한국식 영어와 일본식 영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관광지와 관련한 일본 역사 이야기까지 이어지는데 나보다 일본 역사에 대해 그리 많이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둘이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옆의 백과장이 심심한 것 같아 미안하다. 할 수 없이 그 집에서 나와 라면집과 호텔 지하바를 들러 한 잔씩만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는 다른 직원들이 재미없게 마시고 있었고.

 

  이번엔 다시 직원들을 꼬득였다. 아주 재미있는 일본 선술집을 발견했다고. 남자 직원들은 거의 다 나서고 여자 직원들은 혹 이상한 곳으로 갈까봐 그러는지 처음엔 두 사람이 나서다가 결국 포기한다. 남정네 일곱 명만 가기로 했는데 이번엔 박팀장이 따라나선다. 남정네들만 나서는 모양이 아무래도 미덥지 못한 모양이다.

 

  다시 그 집엘 가니 그 집 아주머니 아주 반가와한다. 젊든 친구들이 앉았던 좌석은 손님이 바뀌어 이번엔 젊은 친구들 두세명과 호주에서 온 외국인이 마시고 있었고, 처음의 할아버지 자리에는 다른 50대 아저시가 앉아있었다. 내 옆에 있던 50대 아저씨는 그냥 있고.

 

  우리가 들어가자 그 집에 비상이 걸렸다. 8명이 드이닥쳤으니 앉을 자리가 만만하지 않다. 새로 온 아저씨는 손님 위치에서 바로 주방 요원으로 자리를 바꿔 서빙을 한다. 어느 정도 단골인지 짐작도 되면서 일본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영업은 두 시까지인데 노래는 12시까지만 부를 수 있다고 주인 할머니는 빠릴 노래를 부르라고 재촉한다. 처음의 50대 아저씨는 12시가 되자 가고 대화는 주로 주방으로 자리를 옮긴 50대 아저씨와 이루어졌다. 직원들도 정말 일본 문화 체험을 했다고 좋아한다.

 

  1시 조금 넘어 나올 때 주인 할머니가 명함을 주는데 그 술집 이름이 '신바시(새 다리)'다. 그 근처에 옛날에 '새 다리'란 다리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파리의 '퐁네프'의 뜻도 '새 다리'인데 파리 세느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고 한다. 교토의 '신바시'에도 거의 할머니에 가까운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운영하는 선술집이 있고.  

 

  신바시에서 왼쪽부터 상 할머니, 주인 아주머니,  그리고 손님에서 서빙맨으로 자리를 바꾼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