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일본 여행(9) - 오사카 성, 운전 기사분의 친절

안동에 사노라면 2006. 10. 5. 01:28

  마지막 날은 호텔에서 체크 아웃한 후 오사카 성으로 향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전국 통일의 꿈을 안고 만들었다는 오사카 성은 2중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 성이다. 입구쪽은어마어마하게 큰 돌로 이루어져 있어 대포를 맞아도 허물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돌들을 옮기고 깍고 쌓는 동안 사람들 고생 많았겠다. 유럽의 대형 건물을 봐도 이런 생각이 들까? 아님 일본에서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그 성에서 농성하면 무력으로 성을 함락시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보였다. 그래도 그 성엔 비상시를 대비한 비밀 탈출구가 있었다고 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 일본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통일을 이루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게 전투에서는 패했으면서도 전략적으로 굴복시키는 승리를 거두는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했다. 그런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죽을 때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자신의 자식을 부탁해야만 했고, 생선을 맡은 고양이는 결국 그 생선을 먹고 말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으킨 막부는 오랜 기간 권력을 행사했지만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저주인지 그의 후손은 결국 이 성에서 패전의 길을 간다. 철옹성이 있어도 전의가 없으면 무의미한 일.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는 전세를 비관적으로 보고 스스로 이 성을 탈출해 몰락의 길을 갔다지 않은가.

 

  그 성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 성의 견고함을 보기 위해서인지 임진왜란의 원수가 지은 성이니 역사 공부를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표정들로 봐서는 역사 공부를 위해 오는 것 같진 않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중심 건물인 천수각을 올라서 전망대부터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대기를 공부하고 내려온다.  

 

  천수각 앞의 뜰에는 일본 사무라이 모형 뒤에서 얼굴만 내고 사진을 찍도록 해 두었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그 사무라이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생각할까 궁금해진다. 임진왜란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 직후 아직은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전국(戰國) 다이묘(大名)들을 조선에 묶어둬서 자신에게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국내 정치의 안정을 위해 일으킨 전쟁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생긴다. 일본의 영웅이지만 우리 민족에겐 원수인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만든 성에 있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를 태우고 다니던 버스는 MK 관광에서 제공한 버스인데 운전 기사는 50대 정도의 점잖은 분이었다. 그 분은 몸으로 친절과 배려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 있었다. 친절하면서도 굽실거리지 않고 때론 몸을 아끼지 않고 서비스를 하지만 대개는 있는 듯 없는 듯 배려를 하는 분이었다. 풍기는 분위기가 고급 호텔 지배인 같았다. 

 

  여행 가방을 버스 바닥에 넣고 뺄 때는 짐칸 안쪽에 직접 들어가서 가벙을 넣고 빼고, 손님들이 버스를 탈 때는 발판이 높아 불편하지 않게 이동식 발판 한 개를 꼭 놓아주었다. 마지막 날 오사카 성을 갈 때는 비가 왔는데 미리 우산을 준비해 두었다가 한 개씩 쓰고 가도록 하고.

 

  오사카 성 관광을 마치고 공항으로 갈 때는 미리 적어둔 작별 인사 편지를 인솔자에게 전해주었다. 그 기사분을 통해 일본의 친절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말로만 듣던 '고객 감동'이란 것을 체험해 보았다.

 

 

 

   운전기사분의 편지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 귀국 비행기를 기다리니 하루쯤 더 놀다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돌아가면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리라. 교토는 좋았다. 오사카는 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