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몽골 혈액원 연수단 교육기

안동에 사노라면 2001. 12. 20. 17:31

몽골 연수단

10월부터 몽골 혈액센터 직원 연수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연수를 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국제협력단에서 처음부터 관여한 사람이 총괄해야 한다고 대구에서 해주었으면 한다. 비용은 혈액원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은 주겠다고 한다. 시설이 낙후한 대구혈액원에서 연수를 하게 되면 우리 나라 이미지에 나쁜 영향이 없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좋은 기회라 생각되어 받아들였다.
오기 전부터 비용청구를 위한 문서 작업, 프로그램 작성, 교재 편찬 등 2주 정도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학위논문도 써야 하는데 뒷전으로 밀렸다. 연수단 8명 중 7명이 젊은 여성이라는 데에 위안을 얻으면서 준비를 계속하였다. 또 연수단 8명 중 7명이 의사란다. 동료의식도 생기고... 호텔은 우겨서 수성관광호텔로 정하였다. 인터불고는 비싸서 애당초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그랜드 호텔은 시설이 좋지만 주변이 모두 삭막한 도로여서 시설은 노후화되었지만 경관이 좋은 수성관광호텔로 정하였다.

11월 20일 연수단이 대구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형님으로 모시는 울란쿠 원장님이 내려서 서구식 포옹으로 환영했다. 몽골 보건부 정책조정국장은 나보다 훨씬 뚱뚱하여 그 사람이 있을 동안은 뚱보 소리는 면하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몽골 갔을 때 그 곳 적십자사 하무총장에게 아부한 보람이 있어서인지 몽골적십자사 사무총장이 'NIGUULSEL(인도장)'이란 훈장 비슷한 메달과 인증서를 보내 왔다. 우리 나라 적십자사에서 인도장은 아주 큰 포장으로 치는데... 저녁은 고급 한정식에서 지사 회장 주최로 만찬이 있었는데 몽골 사람들이 저녁 식사 시간에 받은 메달을 달고 있으라고 해서 숙스럽지만 달고 있었다. 비싼 한정식이지만 그 날 따라 주로 해물이어서 손님들이 먹을 게 별로 없다. 몽골 사람들은 외식 기회가 많은 고위층이 아니면 해물이나 채식을 잘 하지 못한다. 가장 젊은 단원이 반찬을 헤아리고 있었던 모양인데 자기 테이블에 올라온 접시가 35개라며 놀란다.

 

인도장

   몽골 적십자사에서 받은 '인도장'의 인증서

 

11월 21일 연수를 시작했다. 혈액원 시찰부터 시작했다. 우리 나라에서 건물이 노후한 혈액원으로 손가락 안에 든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바로 점심시간이 되고 가장 큰 걱정은 먹는 것이다. 다행히 경북지사에서 점심을 제공하여 한 끼 때웠다. 임산부가 있었는데 이상이 있어 진료를 시켰다. 예상 밖의 경비가 지출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간단히 수액제제나 맞히려고 보냈는데 초음파까지 하게 되었다. 오후 연수 끝나고 남자 관리자 2명은 술마시러 가고(나이트 가서 부킹까지 했다나...)

 

  실무자(전원 여성) 및 여성 관리자(통역 포함 8명)는 쇼핑을 원했다. 그 나라는 겨울에는 날씨에 관계없이 웃옷 위에 코트를 입어야 정상적인 옷차림인데 여성들은 가죽 코트를 많이 입는다. "한국 가죽 코트가 몽골 코트보다 가볍고 좋아서 사고 싶다." "비쌀텐데..." "비싸도 사고 싶다." 아마도 인조가죽 제품을 우리가 레자(leather)라고 하니까 가죽으로 안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백화점을 가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일찍 문을 닫는 서문시장부터 돌기로 했다. 서문시장을 돈 후 백화점이나, 할인점으로 가려고 마음먹었다. 서문시장에서 가죽코트가 20만원 정도인데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참고로 오신 분들의 월급이 10만원 안쪽으로 알고 있다.) 5,000-7,000원 정도의 앞치마, T정도를 쇼핑하고 쇼핑 안내를 한 혈액원 여성 간부의 말로는 슬쩍 보니 지갑에 10만원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서문시장에서 가장 비싼 제품을 산 사람은 아주 젊은 여성으로(아마도 부잣집 딸) 3만 5천원 하는 바지를 샀다. 백화점을 가려느냐고 물으니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백화점은 포기하고 밀레오레를 쇼핑했는데 보지는 못했다.  다행히 언론사 분과 약속이 있어 도망가 쇼핑 수발은 도중하차가 가능했다.

  어느 나라 여성들이나 쇼핑하는 것은 참기 힘들다. 11시까지 치킨 몇 조각 먹고 봉사한 우리 원의 두 과장과 기사실 주임양반은 다음 날 파김치가 되었다. 쇼핑 다닐 때 손님들의 지갑 상태와 급여 상태를 알게 된 여자 과장 한 명은 너무 마음이 아픈 모양이었다. 안내한 여자분이 원장님께 직원들이 헌 옷을 모아서 주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전해준 분께 만류하라고 부탁했다. 가난해도 국제관계에서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없어야 하겠기에. 안내한 남자분은 부인에게 "당신이 돈을 좀 내지 않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11월 22일 오전은 관리자들에게 한국 혈액사업을 주제로 강의를 하였다. 실무자들은 실무 연수를 하고... 오후는 관리자들은 팔공산을 가고 실무자는 계속 연수. 저녁엔 우방랜드의 협조로 우방랜드 구경을 갔다. 놀이 기구를 즐겨 타는 사람은 소수의 사람뿐이었다. 1,000원짜리 컴퓨터 손금을 거의 모든 사람이 보았다. 1,000원이면 그 나라 대중식사 두 끼 비용인데... 보쌈을 먹고 한국 나이트클럽 구경을 갔다. 35만원이 예산 밖에서 날아갔다. 전날 남자 관리자 2명은 대구의 동년배 간부들과 나이트에 가서 부킹을 경험하였다는데, 춤을 찐하게 춘 모양이다. 한국 불루스는 모두 양팔로 꼭 껴안고 추는 것으로 착각하고 춤을 추는데 옆에서 보기 민망했다. 뭐든 나쁜 것은 금방 배운다니까...

11월 23일
학회의 원로 분이 관리자 두 분을 꼭 만나고 싶어하셔서 두 분을 모시고 서울로 갔다. 통역 포함 비행기 비용으로 20여 만원이 순식간에 날아간다. 서울에서의 만남이 끝나고 두 사람은 국제협력단 숙소에 모시고 나는 가정방문 행사 관계로 다시 비행기로 대구에 와서 참석했다. 바쁘다 바뻐. home visiting 행사를 주관한 공급과장댁에 가 보니 벌써 폭탄주가 돌았단다. 벌써 우수 남성 선발대회가 열려서 가장 몽골사람 같은 분이 총무과장님이라고 결정되었단다.

11월 24일 연수단은 산업시찰 스케줄로 경주로 가게 된다. 서울에서 전날 올라간 관리자와 국제협력단 담당 팀장이 버스로 대구로 와서 싣고 경주로 가는 코스다. 나는 일요일 합류하기로 하고 정리가 덜 된 서류를 정리하러 원으로 돌아왔다. 정리가 끝나니 저녁 8시가 되었네......

11월 25일 아이들과 함께 경주로 가서 연수단과 합류했다. 애들까지 데려가서 밥값을 올리니 엄청 눈치가 보인다. 석굴암, 불국사, 문무왕릉 이 코스를 그래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지. 힐튼호텔 투숙했는데 아이들은 이 방이 얼마짜리 방인지나 알고 잘까? 몽골 보건부 국장방에서 술자리가 있어 갔는데 얻어먹기가 민망해 난생 처음으로 미니 바에서 양주 꺼내어 접대했다. 9만9천원짜리 시바스리갈 작은병이다. 밖에서 사 왔더라면 반 값도 안될덴데... 술자리에서 야한 농담들을 주고 받았다. 야한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인기가 있다. 그리고 야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데서 친근감도 느끼는 것 같다.

11월 26일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권여시 연락 않음), 포스코 산업시찰을 했다. 가는 곳마다 작은 선물을 주니 좋다. 아이들은 현장체험 학습으로 대체했는데 저녁에 딸의 일기에는 떠들지 못하게 주의주고, 원하는 대로 사 주지 않았다고 나쁜 아빠라고 적혀 있다. 괘씸한 것들 같으니라고. 내가 얼마나 눈치보며 만든 행사인데 좌우지간 자식에게 공들여서 남는 게 없다. 관리자들은 적십자 본사 연수로 서울로 바로 갔는데 역시 높은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본사에서 잘 해서 몽골 혈액사업도 적십자사가 맡도록 했으면 좋겠는데...실무자들은 안경점 쇼핑을 했다. 그 사람들이 원하던 색깔이 변하는 렌즈는 8만원이라 사지 못하고 세 사람이 중저가품으로 1개씩 샀다. 두 사람은 평시에 사용하는 안경으로 더 싼 것을 한 개씩 더 샀다. 안경점 사장에게 그 나라의 급여 수준을 슬쩍 알려줬더니 마음이 아파서 자발적으로 할인, 기념품, 부속품들을 챙겨서 덤으로 준다.

11월 27일 오전, 오후 연수하고 저녁엔 또 쇼핑을 갔다. 쇼핑 수발에 지쳐가고 있다. 연수 내용에 만족을 하고 있으니 보람은 느끼는데 몸은 말이 아니다.

11월 28일 오전, 오후 연수하고 저녁엔 또 동아백화점, 문구센터 쇼핑을 간다. 이 사람들 체력도 좋다. 낮엔 연수하고 밤엔 쇼핑하고 난 완전히 맛이 가고 있다.

11월 20일 오전 연수하고 오후는 마지막 날인 관계로 인터베네시움 쇼핑을 갔다. 기다리다 심심해서 나도 결국 양복 한 벌을 사고 말았다. 저녁엔 친목 행사를 하고 몽골 손님들만 노래방을 갔다. 혼자서 수발하려니 힘들어서 근처에 사는 후배를 불러 냈다. 몽골 사람들 영어 노래는 우리보다 훨씬 잘 부른다.

11월 30일
오전 수료식을 하고 아트리움 양식당에서 원장님 주최 환송 오찬을 가졌다. 연수단 전원이 전통의상으로 참석하였는데 전통의상을 하니 인물들이 산다. 아리랑을 배워서 부르는데 아리랑을 연습한 정성이 고맙다. 호텔에서 check out을 할 때 한 여성이 멋모르고 국제전화를 했다가 개인부담으로 3만 7천원을 계산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통역에게 우리 혈액원에 와서 쓰든지 공중전화를 쓰라고 안내해주지 그랬냐고 퉁을 주자 안내하기 전에 첫 날 밤에 사용한 것 같다고 했다. 대신 내어주고 싶었지만 이 역시 자존심을 건드리지는 말아야겠기에 꾹 참았다.

오후에 연수단은 서울로 가고 남은 나는 적자가 난 예산을 메울 궁리에 바쁘다. 강사비와 원고료가 좀 되는 것 같더니 적자 메우고 나면 별 소득이 없을 듯 하다. 저녁엔 마누라와 술 마시다.
  

  몽골은 우리 나라를 지배한 역사적 사실이 있는 나라다. 그러한 사실만으로 미워하기는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고구려의 전성시대에는 고구려군의 말발굽도 몽골 땅을 유린했으니까. 역사책에 나오는 고구려군의 원정 기록에 염수(鹽水)는 지금의 몽골 땅으로 알고 있다. 남이 오면 침략이고 내가 가면 원정이라는 식의 국수주의적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요즘 가장 싫어하는 광고는 "남의 나라를 한 번도 침략한 일이 없다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자동차(아마도 렉스톤으로 기억된다.) 광고다. 사실도 아닐뿐더러 파시즘 냄새가 물씬 풍겨서 더 싫다. 그러면서도 우리 나라 국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제 혈액백을 우리 나라 제품보다 훨씬 비싸게 사서 쓰는 것을 보니 첫 생각이 우리 나라 혈액백을 팔아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원품목에 반영하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가 몽골에 지원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경제적 이익과 가장 관계가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유라시아 철도를 연결해서 화물을 보내도 몽골은 지나야 하고, 시베리아에서 가스전을 개발해서 가스파이프를 연결해도 몽골을 지나야 하니까.
  몽골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만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올 봄 가 보았을 때 본 몽골 사람들은 다들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고 있었다. 주말에는 여유도 즐기고. 휴양지에서는 저녁 식사가 끝나면 남녀노소 모두가 어울려 춤을 추면서 즐긴다. 특히 디스코 타임이 끝나자 포크탠스를 추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다 잘 추었다. 미국식 문화에 물들어 흔들고 부둥켜 안는 춤밖에 모르는 한국인들보다는 훨씬 건전한 놀이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포크댄스 시간엔 꿔다놓은 보릿자루인 내가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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