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아내, 딸아이와 롤랜드 에머리히(Roland Emmerich) 감독의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를 보고 왔다. 한글 제목 '투모로우'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내일'이라는 의미이고, 원제 'The Day after Tomorrow'는 '모레'라는 의미이다. 선조들은 '모레'란 의미를 반드시 '내일'의 다음 날이 아닌 '조만간 다가 올 어떤 날'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했으니 영화 제목을 굳이 번역한다면 '모레'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러나 두 남자 주인공 중 아들인 샘(제이크 길렌할 분)이 '내일'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빙하의 땅에 갇히게 되는 설정도 있고, 무엇인가를 다음으로 미룰 때 '내일'이라는 표현을 쓰니까 지구온난화 방지를 미룬 댓가를 치룬다는 내용의 이영화 제목이 '내일'이라는 의미의 '투모로우'로 된 것도 괜찮아 보인다.
영화에 대한 지식이 없는 관계로 영화를 볼 땐 항상 그 메시지에만 집중하는 편이다. 감독이나 주인공 배우의 이름도 다른 인터넷 매체를 통해야 알 수 있고, 영상, 음악, 효과, 컴퓨터 그래픽 등에도 문외한이다. 미국에서 제작된(20세기 폭스사) 영화치곤 그 메시지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가 빙하기를 불러온다는 얼른 보면 상반되는 두 자연현상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부분이 좀 약한 것 같다. 1, 2년 전 TV 다큐멘터리에서 본 내용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기가 올 가능성을 정리하여 본다.
한반도보다 북쪽에 있는 서유럽이 한반도보다도 따뜻한 기후를 보이는 것은 멕시코만류가 유럽 연안까지 흐르기 때문이다. 멕시코만 인근 적도 지역의 바닷물은 수온이 상승하여 가벼운 상태. 반대로 북극해의 바닷물은 조금씩 빙하가 녹으면서 수온이 낮아져 비중이 높다. 북극해의 물은 해저로 내려가고 따다뜻해서 가벼운 멕시코만 인근의 바닷물은 북극해의 물이 해저로 간 자리를 대신하여 해표면 가까이에서 유럽 대륙 쪽으로 흐른다. 차가운 북극해의 물은 해저로 내려가 남쪽으로 흐르고. 따뜻한 멕시코만류가 북대서양의 해표면을 향해 가면서 그 수온의 영향으로 서유럽이 따뜻할 수 있다.
그런데 빙하가 지나치게 많이 녹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온이 내려가 해저로 내려가야 할 물이 빙하가 녹은 민물이 너무 많으면 바닷물의 비중보다 낮아 해저로 내려가지 못하고 북대성양의 해표면을 따라 퍼진다. 차가운 물이 북대서양의 해표면을 덮고 있으면 당연히 서유럽의 기온은 떨어지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서유럽의 기온은 계속 하강하여 빙하기로 바뀐다는 것이다. 당시 이런 과정을 설명하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는 해류의 순환이 어느 날 갑자기 정지되어 빙하기가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6주만에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이해하지는 않았다. 영화에서는 기상학자(고기후학자) 잭 홀 교수로 분한 데니스 퀘이드가 생각보다 빨리 이런 기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허리케인(대서양의 태풍), 토네이도 등의 급격한 기상변화 장치를 사용하여 6주만에 이런 과정이 진행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실성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성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그 과정의 속도이지 그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동아 사이언스의 기사(6월 7일 이충환 기자)에서 강인식 교수(대기과학)는 “영화의 내용은 며칠만에 빙하기가 찾아오고 거대한 저기압이 북쪽에서 생기는 등 과장이 심하긴 하지만 완전히 허구는 아니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또 김구 교수(해양순환)는 “영화에서처럼 기후 변화에 해류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현재 바닷물의 염분 함유도가 실제로 30, 40년 전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낮아졌다는 사실은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의 일요판인 옵저버는 지난 2월 22일 "미국 국방부가 '해수면 상승으로 2007년쯤 네덜란드의 헤이그 등 유럽의 주요 해안 도시들이 물에 잠기게 될 것으로 예측하면서 빙하가 녹으면서 해류 순환에 변화가 일어나 2020년이 되면 영국과 북유럽은 시베리아성 기후가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고 보도했다고 한다(프레시안 2004-02-23 강양구 기자).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면 화석연료 그 중에서도 석유의 소비가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이다. 세계 최대의 화석연료 소비국인 미국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8%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1997년 채택된 기후변화협약인 교토의정서를 거부하고 2001년 3월 탈퇴했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석유자원의 확보를 위해 현재도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아무쪼록 이 영화가 미국민을 자극해 미국이 교토의정서에 서명하게 하고, 석유자본의 용병 노릇을 하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더 이상 인명을 살상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영화 한 편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지구온난화의 과정을 막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샤워할 때마다 엄청난 양의 온수를 쓰는 딸아이가 온수를 데우는 가스의 사용을 줄이도록 자극을 받기를 바라면서 영화를 보았는데 딸아이의 행동에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 같다. 나 역시 내일도 승용차를 몰고 출근할 것이고.
술꾼인 내게 있어서 가장 멋있는 장면은 영국 기상연구소에서 3명의 연구원이 죽음이 다가옴을 예감하며, 마지막 남은 12년산 위스키로 영국에, 인류에, 자신의 축구팀을 위해 각각 건배하고 어둠에 갇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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