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주산지는 사진빨

안동에 사노라면 2005. 10. 2. 23:28

눈을 뜨니 아들이 날 깨우고 있다.

 

"빨리 일어나서 식사하세요. 아저씨들 벌써 일어나 기다리고 있어요." 
'웬 아저씨들?'

 

옆방에 가 보니 고선생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참, 새벽에 같이 집으로 왔었지.'

 

친구는 샤워중이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12시 가까이 되었다. 어제 술 마시기 전까지는 아침에 물안개가 있는 주산지를 보기 위해 일찍 출발하자고 했는데 출발하기 위해 일어나야 할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으니...

 

친구는 남의 집에서 자고 아침 먹는 사람 누구나가 해야 할, 아내의 음식 솜씨를 칭찬하는 것으로 손님의 의무를 이행하고, 아내는 TV에서 몇 번 봐서 낯설지 않다는, 듣기에 따라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아부로 주인의 의무를 이행한다. 아침겸 점심을 먹고 출발하니 한 시 반이 되었다. 급히 딸아이의 고급 디카를 빌리려고 하니 딸아이 내어주다가 배터리가 다 방전되었다고 한다. 설마 한 장은 찍겠지 하는 생각으로 딸아이의 디카도 챙기고, 구닥다리 내 디카도 챙겼다.

 

'오늘은 물이 다 찼을테니 전번처럼 허탈하진 않겠지?'

 

출발하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친구의 윗도리가 없다. 지갑과 최근 장만한 최신형 핸드폰이 들어있다고 한다. 친구 기억엔 우리집에 와서 식탁에 윗도리를 벗은 것 같다는데 집엔 없다. 가능성은 홍어집, 포장마차 두 군데 중 한 곳이다. 낮에 문을 여는 집이 아니므로 저녁에 확인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하루종일 걱정하면서 보내고 저녁에 포장마차에서 찾았다.   

 

주산지 앞에 도착하니 수백대는 되어보이는 차들이 입구의 길을 메우고 있다. 주산지가 이렇게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될 줄은 몰랐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 길로 들어갔는데 결국은 다시 나와 큰길가에 주차할 수밖에 없었다.

 

주산지는 나의 예상대로 물이 차 있었다. 조망대로 가서 딸아이의 고급 디카로 사진을 찍으려니 셔터를 누르기 전에 계속 전원이 나간다. 할 수없이 나의 구닥다리 디카로 몇 장 찍었다. 물이 차 있어도 기대했던 환상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나무가 물에 잠겨있으니 물이 빠졌을 때보다는 괜찮았고, 아름다운 저수지는 분명하지만 기대하던 만큼은 아니었다.

 

  상상속의 주산지는 사진빨이었다.

 

  10월 2일의 주산지. 사진에 문외한인 내가 200만 화소로 찍어도 사진은 괜찮네.

  아직 단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진 않았다.

  단풍이 들면 정말 좋다는데 그 때 다시 가 보기로 하고.